일요한담

[일요한담] 밥 먹듯 바치는 기도 / 임선혜

임선혜 아녜스(소프라노)
입력일 2022-06-22 수정일 2022-06-22 발행일 2022-06-26 제 330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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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일을 시작할 때 어떤 기도를 하시나요?

“주님, 은혜로이 주신 이 시간과 저희 모두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제가 매번 무대에 오르기 전 바치는 기도 중 하나입니다. 네, 맞습니다. 「가톨릭 기도서」에 있는 ‘식사 전 기도’에서 ‘음식’만 ‘시간’으로 바꾼 것입니다.

일 년에 몇 십 회씩 무대에서 청중을 만나는 것이 직업이고 그렇게 이미 2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여전히 무대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도 예상치 않은 여러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곳이니까요.

공연 중에 가사를 잊어버리는 실수를 하거나, 음악적 사인이 서로 안 맞아 그간 열심히 준비했던 리허설이 허무하고 무색하게 되는 위험이 늘 있지요.

오페라에서는 가끔 무대 장치를 바꾸거나 소품을 다루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는데, 이는 자칫 잘못하면 무대 위 가수들이나 무대 뒤 스태프들이 크게 다쳐 공연을 중단해야 하는 경우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또,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만 관람하던 관객분들 중 건강에 이상이 생겨 들것에 실려 나가는 걸 안타깝게 무대 위에서 바라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무사히 한 공연이 잘 끝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축복이 그 공간에 함께하는 모든 이에게 내려야 하는 일일는지요. 무대와 그 뒤에서 열정으로 애써 준비하고,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고대하며 기쁘게 내어 자리한 ‘은혜로이 주신 이 시간!’ 무대 위, 무대 앞, 무대 뒤에서 함께하는 모두에게 복된 시간이기를 바라며, 성호를 긋고 이 기도로 축복을 청합니다.

마흔 개의 음절로 바치는 가장 짧으면서도 함축적인 기도여서 이제는 중요한 미팅 전에도, 친구들과의 여행을 준비하며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에도 얼른 되뇌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를 받으소서. 이제로부터 영원히 받으소서. 죽은 모든 교우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식사 후 곧잘 잊어버려서 잘 바치지 못했던 ‘식사 후 기도’를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식사 전 기도에 이어 바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때로는 차려진 밥상 앞에서 이 기도가 마냥 길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느덧 저도 따라하게 되었고, 곧 공연 전에도 더불어 바치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를 습관적으로라도 웅얼거리면, 그동안 부족하나마 수고하며 즐겁게 준비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떠오르고, 이렇게 오늘도 무대에 설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찬미를 받으소서, 영원히 받으소서’가 절로 이어지지요. 그리고 행여나 호기롭게 들떴던 마음이 있었다면,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안식을 청하는 부분에서 차분해집니다. 죽음을 떠올리면 모든 일에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우리가 일상에서 아마도 가장 자주 바치는 기도인 ‘식사 전, 후 기도’는 제게도 이렇게 공연 전 ‘밥 먹듯 바치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임선혜 아녜스(소프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