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평신도 주일 특집] 평신도 신학자 양성이 필요하다

이승환 기자
입력일 2023-11-07 수정일 2023-11-07 발행일 2023-11-12 제 3367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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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연구에 삶을 걸어도 보이지 않는 미래… 한국교회에서 연구자로 사는 게 가능하려면?
신학 지평 넓혀주는 평신도 신학자 중요
교육기관·재정 지원 필요하지만 ‘극소수’
전공 연계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어

어려운 환경에서도 평신도 신학자로 살아가는 연구자와 이들을 키워내는 기관들이 있다. 젊은 평신도 연구자들이 늘어나려면 보다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평신도 신학자들이 전문성을 발휘해 신학의 저변을 확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수십년 째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신도가 왜 신학을?’이라는 선입견은 여전하다. 평신도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데도 인색하다. 재정 지원도 부족하다. 연구와 집필에 집중할 장소도, 설 강단도 마땅치 않다. 현재 교회 내에서 활동하는 평신도 신학자들의 현실은 이처럼 녹록지 않다. 평신도 주일을 맞아 교회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7명의 평신도 신학자들에게 평신도 신학자 양성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묻고, 양성과 지원 활성화 방법, 교회가 풀어야 할 당면 과제에 대해 들었다.

왜 답보 상태인가

“20여 년 전 석사과정 입학면접 때, 교수 신부님들이 졸업 후 어떤 취업 보장도 되지 않는데 신학을 공부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현재도 반복되는 질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신학자의 회고는 오늘날 교회 내 평신도 신학자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우리신학연구소 경동현(안드레아) 연구실장은 “성직자의 경우 교구·수도회 차원에서 해당 전공을 어떻게 활용할지 큰 그림을 보고 양성해 피양성자 입장에서도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재정 지원도 안정적”이라며 “하지만 평신도들은 개별적 체험에서 비롯된 관심사로 전공을 택하다 보니 중도 포기도 많고, 특히 학위를 받은 후 전공을 살려 연계할 만한 현장을 찾기 어렵다.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평신도 신학자를 양성하거나 신학을 더욱 깊이 연구할 교육기관도 부족하다. 우리신학연구소 이미영(발비나) 소장은 “신학 과목이 있던 가톨릭대 종교학과(학부)는 수년 전 통폐합으로 폐과됐고 평신도에게도 일부 문호를 개방한 신학교의 교과목은 사제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실질적으로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정도만이 국내 거의 유일한 신학자 양성 교육기관이라 보인다”고 밝혔다.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오민환(바오로) 연구실장도 “평신도 신학자가 활동할 마땅한 연구소 특히 대학 내 연구소도 태부족이고, 있다 해도 재정적 어려움이 크다”며 “신학 공부를 ‘수행’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연구자로서 한국교회에 존재하기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왜 필요한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 헌장」 62항은 “많은 평신도가 적절한 신학 교육을 받고, 그 가운데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더욱 깊이 발전시키기를 바란다”고 했듯 교회는 오래전부터 평신도 신학자 양성의 당위성을 강조해 왔다.

62항의 일부를 인용해 평신도 신학자 양성의 필요성을 설명한 서강대 전인교육원 최현순(데레사) 교수는 “신학자들이 교회 쇄신의 심장이라 일컫는 ‘양성’은 교회 구성원 모두에게 해당되고, 특히 시노달리타스 실현에 있어 평신도의 고유한 몫이 있는 만큼 그들의 양성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연구의 지속성 측면에서도 평신도 신학자는 꼭 필요하다. 고려대학교 조광(이냐시오) 명예교수는 “현재 우리 교회 실정을 보면 성직자나 수도자라 하더라도 연구로서의 신학에 전적으로 종사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이 경우 평신도들이 전문 신학자의 역량을 발휘해 교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님성서연구소 김명숙(소피아) 수석연구원도 “평신도들은 (신학 연구에) 대부분 자신의 삶을 건다”며 “사제 성소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도 평신도 신학자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평신도들은 또한 신학을 구체적인 삶에 적용하는 데 유리하며 신원 특성상 현대 사회와 관련한 고민을 연구주제로 삼아 신학적 지평을 넓히는 데 비교적 자유롭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1일 발표한 자의교서 「Ad theologiam promovendam」(신학의 발전을 위하여)를 언급한 이미영 소장은 “문헌은 세상과 인류가 마주하는 도전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독려한다”며 “시대에 맞게 복음을 해석하는 신학이 돼야 한다는 교황님 기대에 비춰볼 때, 현대 사회를 신학적으로 성찰하는 책무, 특히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평신도 신학자들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필요성에 비해 양성과 지원 사례는 소수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평신도 신학자들이 꾸준히 양성되는 데는 소수이긴 하지만 평신도들을 지원하는 연구소와 장학기금 등이 있기 때문이다. 주교회의의 ‘명도회 장학금과 학술 연구비’ 지원사업을 비롯해 각 교구나 수도회에서 지원하는 장학금은 신학을 연구하는 평신도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미영 소장은 “대학원 시기 인천교구 사제연대 평신도인재양성위원회의 장학금이 큰 도움이 됐다”며 “인천교구 출신으로 신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대체로 이 장학금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올해 창립 25주년을 맞은 한님성서연구소도 모범 사례로 꼽힌다. 연구소는 평생 학문에 매진할 평신도를 선발해 유학을 지원하고, 대상자가 학위를 마친 후 고용해 학문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고 있다. 한님성서연구소 송혜경(비아) 수석연구원은 “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이탈리아 로마의 교황청립 성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이후 연구소에서 활동하며 신학 관련 서적도 발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평신도 신학자가 강단에 있어야 같은 길 걸을 평신도도 늘어날 것”

평신도 신학자들은 각 교구나 신학교, 교회 기관에 평신도들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지원이요 양성이라고 전했다. 이미영 소장은 “신학을 가르치는 평신도 신학자 교수진이 있어야 같은 길을 걷고 싶은 평신도도 생겨날 것”이라며 “세상 안에서 생계를 스스로 영위해야 하는 평신도로서 학문과 연구가 생계의 수단이 될 수 있어야 신학을 계속할 수 있다”고 전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삶을 걸고’, ‘수행의 길에 나서’ 신학을 공부하는 젊은 평신도들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방안도 필요하다. 최현순 교수는 “젊은 평신도 연구자들은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는 교회 안에서 성직자·수도자와 함께 살아가고 활동할 수 있는 막대한 자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러한 귀중한 자원을 사제를 양성하듯 전국 각 교구가 책임지고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김명숙 수석연구원은 “교구별로 한두 명씩 성서학이나 신학에 관심 있는 청년을 모집해 양성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양성에 그칠 것이 아니라) 추후 교구가 운영하는 신학대학이나 교육기관 등에 고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