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부르심 ‘식별’ 돕는 안내서 「성소 식별」

그리스도인으로 부름받은 이라면 누구나 거룩한 삶을 추구한다. 그리고 영원한 삶을 향해가는 여정에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고유한 소명을 찾아 자유롭게 응답을 드리도록 초대받았다. 어떤 특정 성소를 살겠다는 결심은 일생 그 방식으로 거룩한 생활을 살겠다는 결정이기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다. 때문에 결정에 대한 책임감으로 부담을 느끼는 젊은이들에게는 앞서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저자는 지금까지 젊은이들을 동반하면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성소를 식별할 것인지 알려준다. 이 책은 결혼성소뿐 아니라 독신성소까지 모든 성소 식별에 필요한 실질적인 안내서다. 총 7개 장에 걸쳐 자기 자신에게 더 알맞은 성소를 찾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1장에서는 성소를 식별할 때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초대하고, 2~3장에서는 하느님의 성성을 향한 부르심에 응답해야 하고, 또 하느님과 진실한 관계를 맺기 위해 기도 생활에 집중해야 한다고 격려한다. 4~5장에서는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과 영적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해 다룬다. 특별히 6장은 수도성소, 독신성소, 결혼성소의 삶이 어떤지 알기 위해 각각의 성소를 알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마지막 7장은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식별하도록 제시한다. 각 장을 시작하며 나누는 체험이나 에피소드에는 저자가 사목 현장에서 겪은 내용들이 녹아 있는데, 자칫 심각하게 흐를 수 있는 성소 이야기를 편안하게 이끌어 준다. 식별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로 내용을 요약한 것이 눈에 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성소를 선택하지 마십시오. 그 성소를 살게 될 사람은 다른 누구가 아니라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에 중요하고, 선하고,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성소를 선택하지 마십시오. 각 성소에 대해 배우다 보면 모든 성소가 중요하고, 선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성소를 잘 살아가는 좋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197~200쪽) 어떤 한 부분에 치우친 선택이 아닌 올바른 식별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4-04-28

「의사 선우경식」, 자신을 녹여 잊힌 이들 치유했던 거룩한 삶의 기록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100길, 영등포의 화려한 쇼핑몰 거리 옆 쪽방촌 입구에 자리한 ‘요셉의원’의 사명은 ‘가난한 환자들에게 최선의 무료 진료’다. 올해로 개원 37주년을 맞는 이 특별한 병원은 개원 초기부터 현재까지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 지원 없이 순수 민간 후원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 2월 말 현재, 의사 120명을 포함한 연인원 60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후원자 약 6700명의 도움으로 하루 평균 100여 명이 진료받는다. 이곳의 겨자씨 역할을 한 고(故) 선우경식 원장(요셉, 1945~2008)은 가난한 환자들을 ‘의사에게 더할 수 없이 소중하고 고귀한 꽃봉오리’로 여기며 평생을 가난한 환자의 무료 진료에 헌신했다. 「의사 선우경식」은 요셉의원의 선우경식 원장에 대한 공식 전기이자 유일한 전기다. 그동안 방송사 다큐멘터리나 기사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만 전해졌던 선우 원장의 삶과 진면목을 잘 들여다볼 수 있다. 이충렬(실베스테르) 작가는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각종 자료를 검토하고, 많은 사람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며 이 책을 썼다.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후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접하는 이야기에서부터, 미국으로 건너가 전문의로 일하다가 부유한 미국 의사의 삶을 거부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의료 봉사의 길을 찾은 모습, 요셉의원을 설립하고 운영해 가는 과정이 충실히 복원돼 있다. 암 투병 중에도, 생의 마지막까지 환자 진료를 놓지 않았던 장면은 자신을 태우고 녹여 빛을 내는 촛불을 떠올리게 한다. 1987년 신림동 사거리에 설립된 요셉의원에서 10년, 영등포역 옆의 현재 위치로 병원을 이전한 1997년부터 선종한 2008년까지 11년 등 21년을 요셉의원 원장으로 근무한 고인은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꿋꿋이 병원을 지키고 가난한 환자들을 돌봤다. 환자들은 몰려드는데 적자는 누적되고 외상으로 달아둔 약값을 몇 달 동안 갚지 못하자 ‘도대체 김수환이 누군데 돈을 안 갚느냐’는 제약회사 전화를 받기도 했다. 당시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병원이라 대표가 김수환 추기경 명의로 돼 있던 탓이다. 생전에 선우 원장은 이 일을 두고 “내가 여기서 도망가면 누가 하겠나 싶어 계속했다”고 회고했다. 예수의 작은 형제회 재속 회원이었던 선우 원장은 요셉의원의 의미를 후원자, 봉사자, 직원들에게 돌리면서 자신을 낮췄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늘 자신을 돌아보았다. 책에는 선우 원장이 자필로 쓴 성찰의 글이 일부 소개돼 있다. “나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한테는 하기 힘들거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나는 받을 줄은 알지만 줄 줄은 모른다.”(285쪽)

2024-04-28

바쁘다고 숨 안 쉬고 살 수 없듯, 기도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도를 잘할 수 있을까.’ 이는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음에 품는 질문일 것이다. ‘기도할 때 자꾸 분심이 드는데’, ‘묵주기도 할 때 습관적으로 기도문을 외워서’ 등등, 기도를 떠올릴 때 연이어 줄줄이 마음속에 올라오는 고민도 마찬가지다. 저자 인만희 신부(마누엘·글라렛 선교 수도회)는 기도의 형식이나 방법을 알려주기보다는, 이처럼 마음먹은 대로 기도가 되지 않아 끙끙대는 이들을 따뜻이 위로하며 단순 명쾌한 해답을 건넨다. 그는 “기도는 여정이고 여정에는 출발지와 목적지가 있다”고 말한다. 출발지는 나의 목마름이고, 목적지는 하느님이다. 그리고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하느님께서 당신 마음에 이미 들어오기 시작하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분심이 들 때는 어떻게 할까. “우리가 생각하는 큰 분심 마저도 기도의 대상”이라는 저자는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라면 큰 분심도 대화의 주제로 가져와 주님 앞에 봉헌하고, 주님과 상의하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오랫동안 일선에서 피정 지도를 해온 경험과 깊은 기도 생활로 얻은 영적 통찰을 바탕삼아 기도에 관한 질문과 고민을 풀어준다. ‘바쁘다’는 말이 일상에서 떠나지 않는 우리는 ‘기도도 바빠서 못했다’고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이에 대해서는 “기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의 말”이라고 지적한 저자는 “기도는 여유가 있을 때 하는 일이 아니라, 매끼 밥을 먹는 일 또는 매 순간 숨을 쉬는 일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간이 없어서 아예 밥을 먹지 않거나 바빠서 숨을 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53쪽) 또 “고해소는 세탁실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의 장소”라고 강조한 저자는 “죄의식이란 그동안 저질렀던 잘못을 기억하는 것이라기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된 사람의 마음 상태를 말한다”고 전한다.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기도를 찾으려면 먼저 하느님과 사랑에 빠져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그분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지, 또 기도를 자칫 의무나 ‘일’로 여기지 않도록 도와준다. 3부로 나뉜 책은 1부에서 ‘나에게 맞는 기도 방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와 ‘기도를 자꾸 미루고 싶어져요’ 등 기도에 대한 기본적인 고민을 다룬다. 2부에서는 묵주기도, 미사, 고해성사, 성체조배 등 기도 생활 안에서 부딪히는 궁금증을 나눈다. 3부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 외로움 등 삶의 전반에서 느끼는 물음에 대한 답변들이다. 던져지는 질문들이 친근해서, 마치 면담 사제와 마주 앉아 내 고민을 털어놓는 것 같다. 기도와 신앙생활의 쇄신을 소망하는 이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늘 하느님 앞에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는 늘 하느님이 자기를 바라보고 계심을 압니다.”(161쪽)

2024-04-21

기도 부담을 ‘사랑 체험’으로 바꿔주는 묵상

철학 교수이자 가톨릭교리신학원 원장인 김진태(그레고리오) 신부가 신학생 시절 동료 신학생과 십자가의 길을 하며 나눴던 묵상을 내놓았다. 파일들을 뒤적이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는데, 그냥 묻어둘지 생각하다가 누군가의 묵상에 도움이 되고 삶에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출간을 결정했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묻혔던 십자가의 길에 대한 저자의 묵상이 깊은 숙성을 거친 향기로 다가온다. 십자가의 길 기도는 성당이나 야외에서 14처를 돌며 바치는 기도이면서, 바치는 시기가 주님 수난을 기리는 사순 시기에 주로 집중해 있어 부담이나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을 향해 걸으셨던 길이고, 그 길을 함께 걷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더 나아가 부활의 삶에 참여한다는 의미다. 장소나 시간에 제한되어 있지도 않다. 14세기에 기도가 체계화된 이후 영적 순례에 기꺼이 동참하려던 이들이 즐겨 바치던 기도였다. 책은 조용한 장소에 혼자 앉아 각 처마다 수록된 그림을 보며 저자 묵상을 따라 기도 바치기에 좋을 듯하다. 14개 기도처를 옮겨가며 예수님 수난에 동참하는 철학자의 기도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특별한 사랑의 체험을 나눠 준다. 저자는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때로는 예수님의 말로, 때로는 군중 속에 숨어 버린 그리스도인의 말을 통해, 혹은 키레네 사람 시몬의 말을 빈다. 또 2000년 후 자기 말로 전한다. “하오니 주님, 연약하여 이렇게 방황하지만, 미완성과 불충실의 꼬리표를 늘 숙명처럼 달고 다니지만, 사랑이 부재하고 주님이 부재하는 듯한 외로운 이 시간에도 저희가 충실한 사랑에 변함없이 몸 바치게 해 주소서.”(78쪽) “내 몸에 걸려 떨어진 바람들의 주검이 대지의 생명을 잉태하는 숨들과 섞여 있습니다. 하느님, 이 계절에 저희는 그래서 삶의 모든 갈등과 고통 속에서지만, ‘타는 목마름으로’, 그러나 ‘열기에 찬 조바심을 넘어’ 겸손하게 기다립니다. 그리하여 기도 안에서 영원을 받아 누립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과 동형(同形)이기를 꿈꾸면서요.”(84쪽) 김형주(이멜다)와 김혜림(베아타) 화백의 그림은 각 처의 묵상과 의미를 돋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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