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394) 별을 품은 아이, 반딧불이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7-18 수정일 2017-07-18 발행일 2017-07-23 제 3054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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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있을 때, 평소 가깝게 지내는 연세 많은 한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신부님, 우리 전화받고 놀라셨죠? 사실 저희들 신부님께 부탁이 있어 왔어요.”

“아니, 제주도까지 와서 무슨 부탁이….”

“신부님께서 며칠 전에 반딧불이를 본 감동을 ○○톡으로 알려주셨잖아요. 그래서 저희 부부도 오늘 반딧불이를 보러 왔어요. 내일 아침 첫 비행기로 올라가려고요. 저희 부부가 반딧불이를 볼 수 있게 도와주세요.”

“지금 청수 곶자왈로 가시면 볼 수 있는데. 저랑 같이 가려고 오셨군요.”

“아뇨, 신부님께 폐를 끼치려고 온 것이 아니에요. 사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청수 곶자왈에 반딧불이 탐방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오늘 그 지역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렸고, 길이 미끄러워 안전상 행사가 취소됐다고 하더군요. 서울에서 미리 전화를 해 보고 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반딧불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제주도에 내려와서 예약 전화를 했더니…. 그래서 혹시 신부님이 거기 길을 아시면, 잠깐이라도 그곳을 보고 오기만 해도 저희 부부는 여한이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불쑥 찾아 왔어요!”

오로지 반딧불이를 보러 저녁 비행기로 제주도에 왔다가, 그다음 날 아침 첫 비행기로 서울로 올라가는 그 부부의 마음. 사정이 너무 딱해 서둘러 그 지역에 사는 동네 동생 부부에게 이 사연을 전했더니, 상황을 알아보고 전화를 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입장이 되든 안 되든, 일단 행사장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도 동네 동생 부부가 반딧불이 해설사로 봉사하고 있던 터라, 행사 책임자에게 서울에서 온 부부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동네 동생 부부 책임 아래 가까스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부부와 나, 그리고 해설사 이렇게 네 명은 반딧불이 탐방로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나 퍼붓던 비는 잦아들었습니다. 1시간가량 탐방로를 걸으며, 마음속으론 ‘아, 세상에! 어머머…. 세상에!’라는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수백, 수천의 반딧불이가 칠흑 같은 암흑 속을 날아다니는 모습에 정말이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부부에게 어떠냐고 물어보려는데, 부부는 이미 자신들이 살아온 한평생 동안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보는 듯 넋이 빠진 모습으로, 밤하늘의 반딧불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탐방을 끝내고 나온 뒤, 그 부부의 첫 마디.

“신부님, 꿈속을 걷다가 온 느낌입니다. 저희 부부, 전 세계 어느 곳을 가 보아도 자연이 펼쳐주는 장관들 중에 이런 풍경은 본 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오늘 우리 부부가 본 반딧불이는 마치 별을 품은 아이와 같았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들 남은 인생, 반딧불이가 보여준 감동을 안고 살아갈게요.”

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별을 품은 아이, 반딧불이!’ 그리고 단지 반딧불이만을 잠깐 보려고 열일을 제치고 달려와 감동의 시간을 가지던 그 부부 역시, 하느님 보시기에 ‘하느님 사랑을 품은 부부, 반딧불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