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대립과 통합 그리고 아름다움 / 윤훈기

윤훈기(안드레아) 토마스안중근민족화해진료소 추진위원
입력일 2017-07-18 수정일 2017-07-18 발행일 2017-07-23 제 305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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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유럽이 동북아보다 더 조화롭고 평화로운 배경에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간의 화해와 통합이 있다. 유일신을 믿는 헤브라이즘과 다신주의인 헬레니즘은 본래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중세 수도원의 한 수도자가 독살당하는 이유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학은 엄격한 금서였다. 중세 천주교는 헤브라이즘에 반하는 모든 사상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마녀사냥으로 잔혹하게 처벌했다. 암흑시대의 편협함은 그렇게 그리스도교를 몰락의 길로 빠지게 했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아씨시의 한 부잣집에서 한 성인이 태어나는데 바로 ‘프란치스코’다. 그는 부유함을 버리고 가난과 결혼한 혁명적 사상가였지만 그의 새로운 철학은 이단으로 몰렸다. 결국 교황도 그의 정신을 이해했고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승인했다. 그는 십자군전쟁 때 이슬람 지도자 술탄을 만나 평화정신을 전도하고 감복시키기도 했다. 병든 중세를 구원한 것은 르네상스(문예부흥)인데 그런 맥락에서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프란치스코를 르네상스의 선구자라고 규정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선종할 즈음 태어난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를 구원한 또 다른 인물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헤브라이즘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접목해 위대한 「신학대전」을 완성한 인문학자이자 신학자이다. 그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통합해 위기에 빠진 그리스도교를 구원했고 성인이 됐으며 아직까지도 존경을 받고 있다.

또한 유럽통합의 사상적 토대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화해가 있었다. 자본주의는 투자, 성장, 발전, 외형 등을 중시하는 남성적인 사상이다. 반면 사회주의는 분배와 평등,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여성적 사유다. 오늘날 모든 자본주의국가에도 사회주의적 요소가 있고,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도 자본주의적 요소가 강하다. 자본주의는 엄연한 현실이며 사회주의는 철학적 이상이라서 서로를 배척하지 말고 함께 가야 한다. 꿈 없는 현실도, 현실을 무시한 몽상도 모두 공허하고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 통합된 것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통합된 것도 각각을 한 몸의 오른손과 왼손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새는 한쪽 날개를 자르면 바로 추락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서양에서 생겼다. 그런데 그 두 이념 간의 갈등이 억울하게도 순진한 한반도에서 터져버렸다. 강대국들의 이익에 희생된 것이다. 남북한은 이데올로기의 시험장이 됐다. 두 이념은 올바로 성숙하지 못했다. 남한에는 ‘천민자본주의’가 활개 쳤고 북한은 다 함께 가난한, 실패한 사회주의가 됐다. 아직 늦지 않았다. 유럽의 교훈을 되새겨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면 된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하나 돼 오늘날 유럽의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이다. 그 이면에는 박해를 이겨낸 수많은 인문학자들이 있었다. 화해와 통일시대에 인문학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만의 문예부흥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윤훈기(안드레아) 토마스안중근민족화해진료소 추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