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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두 이등병 이야기

이연세(요셉) 대령.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입력일 2017-03-14 수정일 2017-03-14 발행일 2017-03-19 제 3036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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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엉거주춤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던 K이병이 바로 눈앞에서 풀썩 쓰러졌습니다. K이병의 전투화 바닥에는 작은 구멍이 뚫렸고,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쓰러진 K이병을 정신없이 들쳐 업고 사선(射線) 아래에 있는 앰뷸런스로 뛰었습니다. “오발이야! 오발!” 중대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의무실로 향했습니다.

1984년 가을의 초입, 우리 소대에는 두 명의 이병이 전입을 왔습니다. A이병은 국립대학을 다니다 입대한, 작지만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야무지게 생겨서 우선 지명한 병사였고, K이병은 겉보기에도 몸이 퉁퉁하고 둔하게 생겼으며 말도 어눌하게 해서 어느 소대에서도 지명을 받지 못한 병사였습니다.

두 이병의 군대 생활은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A이병은 흔히 말하는 똑 부러진 병영생활로 몇 달 지나지 않아 중대 행정병으로 뽑혀갔습니다. 반면 K이병은 군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야맹증까지 보여서 특별관리를 했습니다. 저는 K이병을 늘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고참들의 가혹행위를 차단했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K이병을 만나 애로사항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날 바로 K이병이 총상을 입은 것입니다.

우리 중대는 한 해를 결산하는 중대 사격을 실시했습니다. 아침 일찍 시작한 사격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K이병은 감기몸살을 호소했고 저 또한 느낌이 좋지 않아 영점사격만 시켰습니다. 그런데 중대장의 “한 명도 열외 없이 사격을 실시하라”는 명령에 할 수 없이 마지막 조에 편성해서 사격을 실시하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사고 다음날, K이병이 국군병원으로 후송가기 전 면회를 갔습니다. K이병은 저를 보자 고개를 떨구더니, “소대장님! 죄송합니다. 저에게 그렇게 잘 해주셨는데…. 군 생활에 자신이 없습니다”라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저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시늉을 한 후 안아주며, 지난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오발인가, 자해인가’를 고민했던 문제를 결정(?)했습니다.

검사 결과, 천만다행으로 총알이 발가락뼈를 건드리지 않고 관통해서 장애를 면하게 됐습니다. 후송에서 복귀한 K이병은 이 사고를 계기로 새롭게 회심을 했습니다. 적극적인 군 생활로 주변의 인정을 받았고, 병장이 돼서는 대대 명예헌병으로 선발되는 등 모범병사로 근무 후 만기전역을 했습니다.

성경에 ‘돌아온 탕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받은 유산을 가지고 집을 나가 쾌락과 유희에 빠집니다. 결국 유산을 탕진하고 빈털터리 거지가 돼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그런 작은 아들에게 잘못을 따지지 않고 사랑을 베풀어줍니다. 아마도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새롭게 거듭났을 겁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건실한 큰 아들보다 타락했던 못난 작은 아들을 더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 아닐까요?

이연세(요셉) 대령. 육군 항공작전사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