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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손님이 된 북한’… 주님 생각은? / 이정현

이정현(힐데가르다) 데일리한국 기자
입력일 2017-01-03 수정일 2017-01-03 발행일 2017-01-08 제 302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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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작가의 ‘손님’을 오랜만에 다시 펴봤다. ‘손님’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후 북한 황해북도 신천군에서 발생한 양민학살 사건을 모티브로 쓴 소설이다. 몇 년 전 독자로서 황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다른 소설의 출판을 기념하는 자리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참 인상 깊다고 말했다. 황 작가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는 작품인데”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 이 소설은 오랫동안 ‘문제작’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손님’이라는 소설을 떠나서도 신천군 양민학살 자체가 문제적 사건이다. 북한은 지금도 이에 대해 “미군의 만행”이라고 주장하며 ‘미제 학살기념 박물관’을 세워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다. 당시 14만 명이던 주민 4분의 1인에 해당하는 3만5000명이 학살당했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신천군 양민학살의 정확한 피해 규모는 물론 가해 주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미군에 의한 학살이 아니라 당시 신천군 주민이 좌우파로 나눠져 대립을 하다가 학살로 이어졌다는 주장도 이 중 하나다.

1989년 방북을 했던 황 작가는 ‘우리 내부에서 저질러진 일’이라는 주장에 주목해 ‘손님’을 쓴 경우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천연두를 서병(西病)이라 부르고 ‘손님굿’을 했다. 작가는 이에 착안해 기독교와 공산주의라는 ‘손님’이 한반도에 들어오며 벌어진 민족의 비극으로 신천군 양민학살을 재구성한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 요한은 신천군에서 기독청년단 활동을 한 기독교인이다. 그는 공산당이 점령한 북한 치하에서 고초를 겪다가 6·25전쟁 중 전선이 바뀐 시기에 참혹한 보복을 자행하는 가해자가 된다.

처음 소설을 읽을 땐 학살 장면의 묘사가 너무 잔인해 으스스함을 느낄 정도였다. 종교가 오히려 미움의 싹이 될 수 있다는 데 받은 충격도 컸다. 그래도 나름 패기 있던 역사학도 시절이라 책을 덮으며 북한과 남북관계를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 사회에서 점점 외면을 받는 ‘손님’이 된 북한과 분단현실을 파고들고 싶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말하는 가톨릭 정신에 호감을 느껴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손님’은 책꽂이 구석에 자주 거꾸로 처박혔음을 고백한다. 대학원에 진학해 통일학을 공부해도 “북한은 이해할 수 없는 나라야” 한 마디가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라한 행색의 손님은 가려 받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주인처럼 말이다. 이럴 땐 간음한 여성에게 모두가 돌을 던질 때 홀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던 예수님(요한 8,6)을 떠올리며 마음을 잡는다.

예수님은 손쉬운 비난에 동참하지 않아 거꾸로 비난을 받는 한이 있어도 지켜야 할 가치를 적고 있지는 않았을까. 묵묵히 쓰던 글자가 평화라는 두 단어는 아니었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

이정현(힐데가르다) 데일리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