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매한 감
감과 관련되어, 애매하기 그지없는 예를 하나 소개한다. 유다의 임금 여호사팟의 맏아들 여호람은 부왕을 이어 왕위에 올랐는데, 아우들을 죽이는 등 악한 일을 많이 저질렀다(2역대 21,1-6). 게다가 그는 “유다 산악 지방에 산당을 세워” 백성들을 “그릇된 길로 이끌었다”(11절).
이 대목의 원문을 보면, “감 그가 산당을 세웠다”로 나온다. 이를 어떻게 옮겨야 할까? 대략 세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그가 (산당을 만들었다)’, 곧 ‘그’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니면 ‘또한 산당을 (그가 만들었다)’, 곧 ‘산당’을 강조한 의미로 새길 수 있다. 이도 저도 아니고 부사로 옮겨, ‘더구나 (그는 산당도 만들었다)’로 옮길 수도 있다. 세 가능성 모두 근거가 있다.
하지만 이 점에서 세계적인 석학들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형국이다. 영어·독일어·프랑스어 성경 번역본들을 비교해 보라. 위 세 가지 경우를 다 찾아볼 수 있다. 수천 년 전 사멸한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현대어로 가장 가깝게 옮기는 일은 절대 쉬운 작업이 아니다. 필자는 이런 구절을 보며 전 세계 성경 번역자들의 땀과 고뇌를 떠올린다. 감 같은 하나의 낱말을 놓고 수많은 밤을 하얗게 새웠을 그 분들의 노고에 공감하고 깊이 감사드린다.
■ 전교와 경전공부
감은 구약성경에 700회 이상 등장한다. 히브리어에는 감칠맛 나는 뉘앙스를 표현하는 다른 단어도 많다. 그래서 성경 원문의 다채로운 느낌을 체험하려면, 원문을 직접 읽고 새기는 수밖에 없다. 공부에 왕도는 없지 않은가. 반복적으로 꾸준히 하지 않는 이상, 어느 외국어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성경은 수천 년 전 머나먼 땅에서 발생한 문서이고, 히브리어 성경이 한글로 직역된 세월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전교주일이다. 우리 민족에 불교와 유교가 전래된 역사를 떠올려 보자. 우리 조상들은 경전을 읽고 새기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지금도 한반도에는 한문으로 된 불교와 유교 경전을 원문 그대로 읽고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지식인들이 풍부히 존재한다. 반면에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나 라틴어 등으로 된 그리스도교의 수많은 원천 문헌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신앙인의 숫자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런 상황에서 구약성경 히브리어를 우리 신앙인들에게 친근하게 소개하는 이런 기회가 평신도에 허락되어 필자는 무척 감사하게 느낀다. 부디 독자들이 구약성경 히브리어와 가까워지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며 연재를 이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