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그럼 어떡하지?

조 클라라
입력일 2016-06-14 수정일 2016-06-15 발행일 2016-06-19 제 299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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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성탄 판공성사를 보러 갔을 때였다. 본당을 옮기고 처음 하는 판공성사였고 게다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이었기에 들은 이야기도 없고, 그곳의 판공성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몰라 성당 이곳저곳을 헤매며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리바리 헤매다가 겨우 자리를 잡고 성사를 기다렸다.

죄를 씻고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로 부풀기는커녕 ‘판공성사마저 이리도 복잡하고 피곤한 것이냐’라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는 도중 눈이 점점 풀려 갔다. 그리고 고해소에 들어가면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해야 하나라며 머리를 굴렸다.

기다린 끝에 내 순서가 돌아왔지만 몸이 불편하신 노부부가 기다리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셔서 순서를 양보하고 또 기다렸다. 막상 차례가 와서 고해소에 들어가면서는 얼른 마치고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머리를 굴려 알아낸 나의 죄를 읊어 나갔다. 그 죄란 직장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염증들이었다. 마침내 “이상입니다”라며 고백을 끝냈다.

“음… 아마 예수님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던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하시겠지? 그리고 내가 미워했던 그들을 위해서 묵주기도 5단 바치라고 하시겠지?”라며 신부님의 훈계와 내가 행할 보속까지 짐작하고 마음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럼 어떡하지?”라는 말이 돌아왔다.

“헐~, 대~박!”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노사제의 고백이었다. 신학교 시절에 당신이 품었던 이상, 막상 사제가 되고 나서 사제로 살고 있는 본인의 모습이 이상과 너무 동떨어져서 힘들었던 것, 신자들이 사제에게 기대하는 바에 미치지 못했던 무력감 등을 나직하게 풀어내셨다. 그리고 그 고백의 끝에, 어느 순간엔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단단한 신앙이 생기더라는 당신의 경험을 들려주셨다.

그 순간 굳었던 마음이 녹아내리면서 피곤하고 무력했던 마음에 활기가 돌았다. 그리고 그 노사제가 본당 신부님이라고 착각했던 나는 본당 활동을 열심히 해 보리라는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착각임을 알고 나서 그 각오는 마음 한편에 잘 간직하고 있다.

분명, 내가 봤던 많은 고해성사는 바늘 돋은 내 마음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렸다. 그런데 나는 왜 그리도 고해성사를 부담스러워하는 걸까. 마음의 평화는커녕 마음을 헤집어 놓았던 한두 번의 고해성사 때문일까. 여기에 아직 묶여 있는 나는 고해소 앞에서 마음이 무겁다.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단단한 신앙이 생기기를 지금 이 순간 기다린다.

조 클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