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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중국에 남겨진 아이들 / 이승주

이승주(엘리사벳) 북한인권정보센터 연구팀장
입력일 2016-05-25 수정일 2016-05-27 발행일 2016-05-29 제 299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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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1990년대 북한의 경제난은 북한 주민들의 삶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굶주림을 피해 국경을 넘은 많은 북한 주민들은 중국의 경제적 환경에 기대어 삶을 지속해보려 애썼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으로부터 탈출해 나온 사람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체포 후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북한으로 송환된 주민들에게 남은 선택은 굶어죽거나, 북한 당국에 의해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위험을 감내하며 많은 수의 북한 주민이 탈북을 시도하고 중국에 건너가 살고 있다.

인신을 숨겨야 하는 특성상 재중(在中) 북한 주민의 규모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주로 농촌에서 일손을 돕거나,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는 남성 노동자들의 수는 많은 범죄와 사건에 노출된 뒤 감소된 반면, 여성 탈북자의 경우 중국 현지 남성과의 혼인을 매개로 비율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들 대부분은 인신매매와 강제혼인의 피해자이며 중국 현지인과의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동안에도 끊임없는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이는 그들에게 ‘호구’가 없기 때문인데, 중국의 ‘호구’란 농촌과 도시 주민을 구분하고 농촌 주민의 도시 이주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중국 특유한 제도이다. 중국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도 호구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생계곤란, 교육기회 상실, 의료 및 보건 서비스 배제 등의 문제를 겪게 된다. 무엇보다 탈북 여성이 피치 못하게 한국행을 선택할 경우, 남아있는 자녀의 보호 문제가 야기되고 가족이 붕괴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실태를 파악하고자 중국 현지를 직접 방문해 만난 탈북 여성들은 실제 대부분 호구를 갖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중국 가족으로부터 제대로 인정을 받기 어려운 조건 때문에 외출이 허락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고민은 호구가 없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교육이나 의료 지원 등 자녀에게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공급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저랑 아기도 호구가 없어요. 지난 번에는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했었는데, 호구가 없어 갈 수가 없었어요.“(중국 거주 탈북여성 증언자)

이러한 어려움을 겪다 한국으로 떠나간 어머니로 인해 많은 수의 자녀들이 더 이상 정상적인 양육을 받기가 어렵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면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 중국이 탈북 여성을 일시적인 탈출자로 보고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출산한 자녀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이 앞으로의 가장 큰 목표라고 밝히는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날 때면, 왜 이들이 북한 땅을 떠났음에도 본인이 가족과 함께 살 터전을 선택할 수 없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당장 시급한 것은 남겨진 아동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다.

이승주(엘리사벳) 북한인권정보센터 연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