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열린 교회 공간을 꿈꾸며 / 권순남 수녀

권순남 수녀(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입력일 2016-05-25 수정일 2016-05-27 발행일 2016-05-29 제 2996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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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여성 노숙인 한 분을 만나 작은 도움을 준 적이 있었다. 아무도 몰래 성당 한편에서 재워 드렸고 밥도 해 드렸고 차비도 드렸다. 문제는 그날 이후 이분이 계속 찾아와 밥 달라, 재워 달라, 직업을 구해 달라 막무가내로 청을 하셨다. “쉼터에 소개해 드리겠다”고 하니 “집에 연락되면 안 된다”고 절대 안 가시겠다고 버티는 것이었다. 난감 자체였다. 우리 성당은 대지가 꽤 넓은 편이다. 이 넓은 대지에 많은 교리실, 부대시설이 있지만 여성 노숙자 한 분을 재워 드리기는 어렵다.

비단 우리 성당만 그럴까? 물론 성당이라는 곳이 사회복지 시설이 아니니까 장기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성당이란 장소에서 이런 분들의 등을 떠밀어 낼 때마다 혼자 마음이 무거워진다. 전국의 교회, 사찰, 성당, 기타 종교 시설의 대지와 건평을 다 합하면 얼마나 될까? 주일에 주로 쓰이는 그리스도교 관련 시설들은 비어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도 지역 사회를 위한 공간 나눔이나 노숙자들의 쉼터, 경로당, 어린이 놀이시설로 쓰이는 경우는 극히 적은 게 대부분일 것이다. 강의 소임이 많은 나는 입만 떼면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얘기하고, ‘가장 가난한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 말도 자주 인용하기도 하고 나날이 부유해지는 수도회와 교회에 늘 도전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던 내가 나에게 도움을 청하러 찾아 온 사람에게 “이런 교회 공간은 당신 같은 사람들을 위한 집이 아니다”라며 내쫓는 일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심각하게 고민했던 ‘교회와 연관된 모든 건물들이 어떻게 지역 사회를 위해 쓰여야 할까’ 다시 고민에 싸였다. 하기야 같은 신앙인인 우리들 사이에서도 행사를 위해 가톨릭학교, 교구청, 성당, 유치원 등 교회 내 시설을 빌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빌려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 밖 사람들이나, 특히나 냄새나고 신분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교회건물을 빌려주거나 이용하게 하는 일은 그야말로 요원해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유럽의 텅 빈 수도원을 향하여 순례객을 위한 유료 숙박시설로만 쓰지 말고 난민들을 위한 집으로 사용해 보라 하신 것을 기억한다. 유럽의 수도원 규모를 알기에 그 말이 얼마나 크게 와 닿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국 가톨릭교회의 공간 나눔은 어떤가? ‘자비의 예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을까? 우리 스승 예수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삶의 모습을 보시면 뭐라고 하실까? 예수는 어떤 건물을 지어 놓고 구원 받을 사람들은 거기로 모이라 하신 적이 없으셨고 이곳은 내 땅이고 내 구역이니 이러저러한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다고 하지도 않으셨다.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하시며 이 땅 위에서 이방인처럼, 나그네처럼 살아가셨다. 그분을 드러내 보여주고 제자됨을 가르치는 성전과 그 많은 부속 건물들. 자비의 해를 보내면서 교회는 어떻게 자비를 보여주고 실천하고 있는가?

어릴 때 성당에서 뛰놀았던 추억들을 간직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들의 성당 마당이 매일 차들로 가득찬 주차장이 아니라 동네 아이들이 마음껏 안전하게 뛰어 노는 운동장이었으면 좋겠다. 다른 한편에선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바둑도 두고 손자·손녀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잃어버렸던 할머니의 잔소리가 피어올랐으면 좋겠다. 우리 교회의 여러 장소가 힘든 사람들이 자주 찾아 올 수 있는 둥지가 되어주면 좋겠다. 모임 장소를 찾아다니는 노동자들의 회합실도 되어주고, 외국인 노동자의 축제장도 되고, 돈이 없어 결혼 못한 사연 많은 사람들의 늦은 결혼식도 수시로 올려주고, 제대로 갈 곳이 없는 이 나라 청소년들이 농구와 탁구라도 할 수 있도록 개방되었으면 좋겠다. 또 실직한 가장의 휴식처도 되어주고, 비바람 치는 날 노숙자들이 잠시 묵었다가 떠날 방 하나 쯤은 내어줄수만 있다면… 꿈일까? 교회와 관련된 모든 건물들이 그런 공간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기란 정말 어려운 것일까? 안 되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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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남 수녀(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