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시는 은총의 신비 / 이인평

이인평 (아우구스티노)시인
입력일 2016-05-25 수정일 2016-05-27 발행일 2016-05-29 제 2996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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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시상이 떠올라야 하고 떠오른 시상을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떠오른 시상을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은 사실 본인도 모른다. 자기가 미리 알고 시를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생각을 미리 가질 수는 있지만 막상 그 인생을 살다 보면 자기가 계획했던 대로 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듯, 시 역시 자기가 의도한 대로 창작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시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펜을 들고 쓰면 시가 되는 것인가? 시를 쓰는 시인들에게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의 경우 시는 은총의 신비다. 앞에서 말했듯이 자기 맘대로 인생이 살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듯이 시 역시 창작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 나올 때는 그것이 애당초 자신이 미리 그렸던 얼굴은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에 은총의 신비가 있다. 내 마음과 정신과 영혼이 지향하고 있는 믿음에 따라 은총이 주어진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신비다. 내가 추구했던 길이 내 의도대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더 아름답고 감동적인 결과가 은총으로 드러나는 신비를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루하루의 삶이 은총이듯, 한 편 한 편의 시가 은총이라는 것은 나에게 가장 진실한 답이다. 내가 무엇을 의도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참된 가치, 시적인 감동을 머금는 데는 이미 내가 짐작할 수 없었던 은총의 신비가 포괄적으로 개입되어 있었으니 이미 내 생명 자체가 주님의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다.

이인평 (아우구스티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