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 / 이승주

이승주(엘리사벳·북한인권정보센터 연구팀장)
입력일 2016-05-17 수정일 2016-05-27 발행일 2016-05-22 제 299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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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범수용소는 북한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구금시설이다. 북한 당국이 규정한 반국가범죄 및 반민족범죄를 저지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을 수용하고 처벌하고자 설립됐다. 북한 당국에 반하는 ‘정치범’이라는 존재와 그들에 대한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구금 및 처벌, 가족까지 연루되는 연좌제 처벌의 특성 등 북한 내부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피해 영역이다.

필자는 2014년 4월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상황정기검토(NKorea Universal Periodic Review Session)에 참가한 적이 있다. 본 세션은 유엔 회원국 전체를 대상으로 인권 상황을 검토하는 것이며, 4년 6개월에 한 번씩 국가별로 돌아가며 점검을 받게 되는데 북한 당국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세션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본 회의에서는 각국을 대표하는 외교관들이 북한 대표부를 앞에 두고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질의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곳에 참가하는 국가 수에 따라 시간이 배분되는 특성상 한 국가당 1분 30초 정도의 짧은 질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로 인해 각국은 북한 당국을 대상으로 가장 중요하고 긴급하게 제기돼야 할 문제들을 순서대로 질문했다.

이 회의가 진행되기 전 필자는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문제 제기가 본 회의에서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후 정치범수용소야말로 북한 당국의 가장 불법적이며 심각한 인권침해가 이뤄지는 곳이라는 점을 각국 대표부들과 만나 피력했다. 이러한 문제점은 이미 많은 나라에서 인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수십여 개국이 차례대로 1분 30초의 짧은 시간을 활용해 정치범수용소의 존재를 인정하고 현재 구금된 이들의 즉각적인 석방과 정치범 가족들에 대한 조치 등을 강력히 문제를 제기했다. 북한 대표부는 이를 미처 예상하지 못한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마이크가 켜져 있다는 점을 잊은 채 “아 이거 어떻게 응답해야 하나”라며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우리말을 알아듣는 우리 일행과 한국 관계자들에게는 참으로 통쾌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윽고 주어진 응답 시간에 북한 대표부는 “정치범수용소라는 시설은 북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내놓을 뿐이었다.

북한 당국은 통치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을 성분에 따라 계급별로 나눠 관리하고 이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과 관련된 경력이 있거나 한국행을 택해 행방불명인 상태인 사람의 가족, 한국과 관련된 말 반동 등 북한 당국의 기반을 흔드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장 엄중한 처벌의 대상으로 본다. 그러나 통일이 이뤄지거나 북한 정권이 무너졌을 때, 그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없애려고 할 것이 바로 이와 관련된 기록이다. 가해자들을 처분할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정치범수용소에 관한 피해사례를 기록하고 그것을 잘 보존하는 것만이 ‘정치범수용소’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승주(엘리사벳·북한인권정보센터 연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