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 최영미

최영미(루치아·수원교구 월간지 「외침」 팀장)
입력일 2016-05-17 수정일 2016-05-27 발행일 2016-05-22 제 299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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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대녀가 두 명인데 둘 다 저랑 동갑내기입니다. 한 명은 냉담 중이고 또 한 명은 일찍 세상을 떠나 품 안의 자식(?)이 아닙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대녀는 둘째 아이가 다섯 살 때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갈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기적처럼 아이들이 고3, 고1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랜 투병을 하면서도 늘 밝고 유머가 넘쳤습니다. 함께 미사를 드리고 일상을 나누면서 친자매처럼 됐지요. 병의 악화로 내일을 알 수 없는 깊은 밤, 전화를 한 그녀는 친정 식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고통을 토로했고 함께 “엉엉” 울기도 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그런 것 같습니다. 식구들이 걱정할까봐 혼자 삭여야 할 일들이 많아집니다. 괜찮은 척, 잘 사는 척. 선의의 ‘척’을 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대녀와 저는 속사정을 다 나누며 주님이 맺어준 ‘제2의 가족’으로 지냈지요. 친하게 지내온 대녀가 막상 세상을 떠나자 한동안 어디 눈을 둘 곳이 없었습니다. 어디든 다 함께해온 추억이 서려 있어 눈앞이 흐려졌던 것이지요.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일은 대녀를 생각하면 늘 밝게 웃는 환한 얼굴이 떠오릅니다. 주님 곁에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됐습니다.

가까운 이들을 먼저 보내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충분히 사랑하고 친교하면 여한이 적어진다는 점입니다. 대녀의 떠남은 분명 슬픈 일이었지만 주님 안에서 충분히 서로를 보살폈던 덕분에 여한은 적었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알 수는 없지만, 다시 만날 때까지 나의 딸, 나의 친구여! 주님 품에서 늘 편안하길.

최영미(루치아·수원교구 월간지 「외침」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