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이야기] (20) 안드레이 루블료프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 )
입력일 2016-05-17 수정일 2016-05-18 발행일 2016-05-22 제 2995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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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그린 이콘, 사랑의 신비로 초대
성부 성자 성령, 세 인물
얼굴 매우 닮게 그려져
루블료프 활동 영화로도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삼위일체 이콘’.

■ 삼위일체 이콘을 묵상하며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으며 이 주제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알려진 러시아의 수도사이자 성상 화가였던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삼위일체 이콘’을 바라봅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1410년 완성해 성 세르게이 삼위일체 수도원에 안치했던 이 그림은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의 트레차코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나온 세 명의 손님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찾아온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정작 아브라함과 사라의 등장을 볼 수는 없지만 그 배경에 있는 마므레의 나무를 통해 그 소재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성화를 조용히 바라보며 묵상하다 보면 성부, 성자, 성령을 상징하는 세 인물이 또렷이 구별되는 개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얼굴은 매우 닮게 그려져 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해석가들은 이것이 ‘본체로서는 한 분’이시나, ‘위격으로는 세 분’이신 하느님이라 고백하는 삼위일체의 교의를 표현하기 위해 화가가 의도한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 분은 나무 탁자를 가운데 두고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잔이 있습니다.

이는 성체성사를 상징하며 세 분 가운데 중심에서 두 번째 위격을 상징하는 자세를 취한 손으로 그 잔을 향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서 신앙인이 삼위일체를 묵상한다는 것은 사랑의 성사에 대한 깊은 인식으로 인도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이 성화가 삼위일체의 신비를 관조하는 것은 곧 사랑의 신비에 대한 고백이라는 것이지요.

그림을 계속해서 가만히 묵상해 보면 세 분은 고요히 앉아 계시되, 서로가 서로에게 향하는 사랑의 움직임이 감돌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그림을 통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상호내주’의 신비 속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는 루블료프가 깊이 묵상한, 인간을 위로하시는 삼위일체 신비의 핵심입니다. 이 성화에 흐르는 고요하면서도 따뜻한 색과 정조는 우리를 매혹하고 ‘상호내주’의 신비에 시간을 잊고 잠기게 합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성화들은 유난히 온화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유명합니다. 그 특징이 이 그림에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세 위격,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서로를 더없이 사랑하시며, 서로를 초대하십니다. 삼위일체를 묵상하는 소재로서 아브라함이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들을 환대하고 마음에서부터 극진히 대접한 장면을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 온화한 사랑의 신비는 그림을 부드럽게 채우고 그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의 영혼까지 어루만져 줍니다.

이 그림을 감상한 영성가 헨리 나웬 신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도 세 거룩한 천사가 나누고 있는 친밀한 대화에 동참하라고, 그리고 식탁에 더불어 앉으라고 부드럽게 초대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성자에게 몸을 기울이신 성부의 움직임과 성부께로 몸을 기울이신 성자와 성령 두 분의 움직임은 하나의 움직임을 이루게 되고, 기도하는 사람은 그 안에서 마음이 드높여지고 든든해진다(「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 분도출판사).” 나웬 신부는 이 삼위일체 이콘을 묵상한 장의 제목을 ‘사랑의 집으로의 초대’라고 지었는데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가 이 그림을 묵상하고 깨닫게 되는 것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향함으로써 두려움과 폭력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사랑의 집’ 안에 살게 되리라는 믿음과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 안드레이 루블료프와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이 놀라운 작품을 남긴 러시아의 이콘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수도사로서 성덕에도 뛰어난 인물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1988년에 공식적으로 그를 성인으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대체로 1360년 경에 태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정치적으로는 타타르족의 지배하에 있던 러시아가 조금씩 독립의 가능성을 보였던 시기였는데, 백성들에게는 수많은 전란과 약탈로 가득했던 가혹한 폭력과 죽임의 시기였습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평화로운 이콘들은 그러한 시기에 하느님께 희망을 두며,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려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1906년, 그가 1410년 경 그린 것으로 보이는 ‘삼위일체 이콘’이 완전히 복원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재발견되었을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라도네츠의 삼위일체 수도원 수도사였던 그는 이곳에서 수도원 창립자이자 위대한 성인이었던 성 세르게이와, 그의 사후에는 그 제자인 니콘에게 영성을 배운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것이 기쁨과 평화, 온유와 사랑이 중심이 된 그의 성화의 영적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후 그는 각지를 다니며 수도사이자 성상화가로서 활동하는데, 비잔틴에서 건너온 위대한 성상화가 테오판의 제자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405년 테오판이 주도했던 모스크바의 주님 승천 대성당의 벽화와 성화 제작자들의 명단 마지막에 그의 이름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에도 많은 존경을 받았으며 당시로써는 비교적 연로한 나이에 아마도 흑사병으로 1430년 1월 29일 안드로니코프 수도원에서 죽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 한 장면.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 한 장면.

안드레이 루블료프와 함께 떠오르는 현대의 예술가는 러시아의 위대한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입니다. 타르코프스키는 첫 장편 작품인 ‘이반의 어린 시절’ 이후 두 번째 작품으로,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생애를 다룬 205분의 대작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고군분투 끝에 내어놓았습니다. 오늘날까지도 탁월한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에 서구 평론가들과 관객들은 열광했지만, 일종의 선전영화를 기대했던 당시 공산정부로부터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고, 이는 그가 망명할 때까지 지속된 고초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감독 말에 의하면, 일반적인 전기영화가 아니라 루블료프가 ‘삼위일체’를 그리게 한 ‘시적논리’를 따라간 이 영화는 8개 에피소드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타르코프스키가 이 영화의 의미를 스스로 밝힌 말을 음미하면서,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시대에 삼위일체 영성을 통해 피어난 아름다움이 주는 구원을 묵상해봅니다.

“이 영화는 형제 살육이 벌어지고 타타르족이 러시아를 침략했던 시대에 안드레이 루블료프로 하여금 ‘삼위일체’라는, 즉 형제애, 사랑, 화해하는 믿음의 이상을 담은 천재적 작품을 낳게 한, 형제애를 갈구하는 민족적 동경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던가를 다루는 작품이다.”(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 분도출판사, 43쪽)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