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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치유된다’는 성광 사진 유포 진단

최용택 기자
입력일 2017-06-13 수정일 2017-06-13 발행일 2017-06-18 제 304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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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은총만 바라선 안돼… 기도와 성사생활로 신심 다져야”
12사도 유해 담긴 성광 사진 퍼지는데 출처 불분명하고 교회사적 근거 불확실
미성숙한 신심활동 주의 미사와 성체강복 통해 예수 성심 묵상하고  신비 안에 머물러야 
우리 믿음의 대상은 성광과 감실이 아닌 성체 안에 계신 주님

예수 성심에 대한 올바른 흠숭을 위해서는 미사와 성체강복, 성체조배를 통해 예수 성심을 묵상하며 그 신비 안에 머물러야 한다. 사진은 12사도 유해 성광 사진과 무관.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사랑을 공경하고 묵상하는 예수 성심 성월을 지내고 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예수의 자애로운 치유의 은사에 너무나 기댄 나머지 그릇된 신심에 빠지는 경우도 생긴다. 최근 ‘보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고 알려진 성광을 ‘공경’하는 것도 그릇된 행위로서, 미성숙한 신앙을 드러내는 사례다.

이에 따라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박준양 신부의 제언을 바탕으로, 최근 신자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그릇된 신심활동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올바른 예수 성심 공경 의미를 돌아본다. 박 신부는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이자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전문신학위원,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신학자다.

서울 한 본당에서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성훈(40·마티아)씨는 최근 단원끼리 안부를 주고받는 ‘카××톡’ 단체창에서 사진 한 장을 받았다. 동그란 성광 안에 12사도의 유해가 담겨있는 사진이었다. 예수를 배반하고 죽은 유다 이스카리옷 대신 바오로 사도의 유해가 포함돼 있다는 설명도 달려 있었다. 사진을 보내온 단원은 “이 사진을 보기만 해도 치유의 은사를 받을 수 있다”면서 “사진을 널리 퍼뜨려달라”고 당부했다.

김씨는 “사진을 보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사진을 보내 준 단원이 신심활동에 아주 열심인 신자이기도 하고, 믿는다고 손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믿었다”면서 “주변 신자들에게 퍼 나르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위원장 손희송 주교)는 최근 12사도의 유해가 담겼다고 하는 이 성광 사진이 SNS를 통해 신자들 사이에 유포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김씨가 받았고 퍼뜨렸다는 그 사진이었다. 신앙교리위원회 위원들은 이 사진과 관련해 토의를 하고 우려를 표명했다.

박준양 신부
■ ‘진정한’ 유해인가?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박준양 신부는 “출처가 불분명한 성인 유해를 찾아 헤매며 현혹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신앙이 미성숙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완전히 잘못된 이단적인 신심활동도 조심해야 하지만, 과장되고 미성숙한 신심활동도 주의해야 한다”면서, “신자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건강하지 못한 신심활동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사진의 성광에는 12사도의 유해를 담겨 있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 유해를 입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원천적 경위나 출처 등을 확인할 길은 없다.

교회 역사를 돌이켜보면, 초대교회에서부터 중세시대를 거치기까지 성인 유해 공경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성인 공경의 아름다운 전통에 참여했다. 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유해 공경과 잘못된 인식으로 말미암아 유해 약탈이 속출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진짜 유해와 가짜 유해가 구분되지 않고, 여러 지역에서 중복해 소장되기도 했다. 따라서 성인 유해 공경은 교회의 허락을 받아 이뤄져야 한다. 교회의 교도권은, 성인들 특히 순교자의 유해 공경에 있어 확실하고 ‘진정한’ 유해가 아니면 인정할 수 없다는 지침을 역사 안에서 거듭 확인해왔다.

박 신부는 “오늘날 갑자기 우리나라에서, 12사도의 유해를 모두 한데 모은 성광이 출현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면서 “유해와 관련된 확실한 교회사적 근거가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박 신부는 무엇보다 과장된 성인 유해 공경으로 인해, 삼위일체 하느님께 드려야 할 찬미와 흠숭이 소홀해지거나 불충실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는 것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무이한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과 신비에 대한 경시와 간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 자동적·기계적 은총은 없어

특히 사진을 보기만 해도 치유의 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진 설명에 관해 박 신부는 “내적 헌신 없이 보기만 해도 은총을 받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은총은 하느님과 나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으로 자동적·기계적 은총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 신부는 유해의 ‘진정성’에 관한 문제는 별개로 본다 하더라도, 이 사진은 유해라는 ‘사물’ 자체의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힘을 믿게끔 유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일 성인 유해라는 표지를 통해 그 신앙의 모범을 본받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으로 성인들을 공경하고 또 성인들의 전구를 간절히 청한다면,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뜻과 범위에 따라 은총을 입게 된다. 박 신부는 “즉, 유해는 내적 은총을 받기 위한 외적 요인이자 표지 혹은 도구일 뿐이지, 그 자체로 자동적인 은총의 효력을 발생시키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 사진에는 은사에 대한 오해도 깔려있다. 은사는 교회의 공동체적 필요와 봉사를 위해 주어지는 것이기에, 개인의 영예를 위해 이례적인 은사를 청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1코린 12,9)가 주어질 수도 있지만, 이는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1코린 12,11)이기 때문이다. 또한 은사의 진실성과 올바른 실천에 관해 판단하는 몫은 교회 교도권에 속한다.

5월 13일,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미사에서 성체강복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CNS 자료사진

■ 유해 공경이 성체조배보다 앞선다?

마지막으로 박 신부는 “우리는 성인들에 대한 ‘공경’을 통해, 마침내 하느님을 향한 ‘흠숭’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성인들을 향한 ‘공경지례’와 삼위일체 하느님을 향한 ‘흠숭지례’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고 전했다.

우리가 성인들을 공경하는 이유는, 그분들 삶의 모범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전구를 통해, 성인들이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주시도록 청한다.

예수 성심에 대한 올바른 흠숭을 위해서는 미사와 성체강복, 성체조배를 통해 예수 성심을 묵상하며 그 신비 안에 머무를 것을 강조한 박 신부는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직접 모시는 것보다 더 큰 은총과 치유, 기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성체조배보다도 성인의 유해에 대한 공경에 더 빠지는 신자들의 태도는 ‘공교육은 등한시하면서 사교육에 충실한 학생’의 모습에 비유할 수 있다. 박 신부는 “미사와 성체조배 등으로 직접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데, 과도한 성인 유해 공경으로 빠지는 것은 좋지 않다”면서 “마치 공교육과 사교육이 조화를 이뤄야하는 것처럼, 하느님께 대한 직접적인 흠숭과 성인들의 전구를 통한 공경이 조화를 이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교회는 예수 성심 대축일을 맞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미사와 성체강복, 성체조배를 통해 예수 성심을 묵상하고 그 신비 안에 머무를 것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깊이 묵상해야 할 대상은 불확실한 유해가 담긴 성광이나 사진이 아니라 바로, 성광과 감실 안에 모셔진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자비로운 마음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치유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