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서울 노동사목위 ‘주일학교 청소년 노동인식·아르바이트 실태’ 설문조사 결과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6-05-03 수정일 2016-05-03 발행일 2016-05-08 제 299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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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노동인식’ 심어주는 교리교육 필요
10명중 7명이 경비원·농부… ‘노동자’라고 생각
희망직종은 노동자 아니라고 여기는 교사·의사 등
‘노동’에 대한 인식 신자-비신자 학생 다를 바 없어

4월 27일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노동절(5월 1일)을 기념해 마련한 심포지엄.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위원장 장경민 신부, 이하 노동위)가 노동절(5월 1일)을 기념해 4월 27일 마련한 심포지엄에서 나온 ‘서울대교구 주일학교 청소년들의 노동인식 및 아르바이트 실태’ 조사 결과는 ‘삶과 신앙의 괴리’라는 한국교회가 앓고 있는 고질적 문제의 뿌리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세속에서의 삶을 지탱하게 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게 하는 ‘노동’에 대한 교회 내 청소년들의 의식이 일반 청소년들의 노동에 대한 인식과 거의 차이가 없는 현실은 가속화되고 있는 세속화와 중산층화로 인해 위기에 처한 교회의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노동위는 이번 조사를 위해 서울대교구 내 54개 본당 중·고등부 주일학교를 표본으로 선정해 3월 한 달 동안 교회 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였다. 이 가운데 50개 본당 1818명의 청소년들이 응답했다. 주교회의가 발표한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15’에 따르면 서울대교구 본당은 229개, 주일학교 학생 수는 중등부 6165명, 고등부 3842명이었다. 따라서 노동위의 조사는 서울대교구 주일학교 학생가운데 18.17%에 이르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들은 셈이다. 교회 차원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뤄진 조사 가운데 노동위의 이번 조사처럼 광범위한 표본을 대상으로 이뤄진 사례는 처음이어서 청소년사목에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학생들의 답변은 우리 사회뿐 아니라 교회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들의 노동에 대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조사 결과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직업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수가 응답한 직업은 ‘아파트 경비원’(1279명, 70.4%)으로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농부(1251명, 68.8%), 마트 계산원(1248명, 68.6%), 인터넷 설치기사(1071명, 58.9%) 순으로 답했다.

이에 비해 주일학교 청소년들이 희망하는 직업은 교사(203명, 14.1%), 의사(91명, 6.3%), 과학자(65명, 4.5%), 경찰관(61명, 4.2%), 연예인(49명, 3.4%)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희망 직종은 대체로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결과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4년 실시한 ‘전국 중·고생 희망직업 실태조사’ 결과와 매우 유사하다. 이는 달리 말해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의식에 있어 신자와 비신자 청소년 간에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청소년사목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교회 내 청소년들조차 ‘노동’에 대한 가치관에 있어 일반사회 구성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교회가 청소년들에게 세상과 구별되는 ‘대조사회’(contrast society, 이 세상과는 완전히 다르고 대조되는 새로운 세상)로서의 정체성과 존재양식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하느님 나라를 말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이미 이 땅에 와 있는 하느님 나라 실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천주교 신자라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응답한 비율은 82.5%(매우 그렇다(1055명, 58.0%), 약간 그렇다(446명, 24.5%))에 달했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이 부당한 일을 당하면 함께 싸워줄 것이다’에 대해서는 32.7%만이 ‘매우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는 청소년들이 삶의 가치관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에서, 교회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주일학교 교육이 내용이나 실질적인 면에서 세속의 가치관이나 흐름을 전수하는데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확인시켜준다.

아울러 가톨릭적 정신을 심어줄 뿐 아니라 각자가 서 있는 현재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교회의 (교리)교육이 겉돌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뼈아픈 현실로 다가온다.

여느 한국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교회 내 청소년들도 ‘살인적인 학습량’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 필수적인 노동교육은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현재 정규 교육 과정상 노동교육은 극히 미미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노동문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전 과정을 통틀어도 2~5시간 정도에 그친다. 정부가 2018년부터 정규 교과에서 노동교육을 강화하기로 했지만 노동의 가치나 권리를 제대로 배우기에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교회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육 전반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되는 것은 이 같은 상황 때문이다.

이번 조사 결과를 분석한 이수정(세실리아) 노무사는 “‘청소년은 노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는데서 그칠 일이 아니다. 청소년 알바, 비정규직 등 현재의 노동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관심을 기울이는 게 먼저이고 변화에 대한 관심은 노동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