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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동 신임 아빠스 특집] 삶과 신앙

우세민 기자,정정호 기자
입력일 2013-05-14 수정일 2013-05-14 발행일 2013-05-19 제 2846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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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솔선수범하며 모범적으로 하느님 일에 헌신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신임 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의 아버지는 목수였다. 그래서인지 박 아빠스는 요셉 성인처럼 평생을 묵묵히 가족들을 돌보며 살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있다. 박 아빠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처럼, 온화하면서도 맡은 일에는 철두철미한 박 아빠스의 모습에서 왜관 수도 공동체의 아버지로 살아갈 앞날을 짐작할 수 있다.

■ 성실한 ‘컴퓨터 박사’

박현동 아빠스는 1970년 2월 3일 경북 울릉도에서 부친 박팔수(암브로시오·71)씨와 모친 김순연(데레사·70)씨 사이 2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에도 늘 긍정적인 사고와 성실함을 잃지 않았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충실히 살았다. 특히 박 아빠스의 성실함은 부친의 영향이 크다. 평화통일자문회 회장으로 대통령 표창과 공로패를, 거주지 동장으로 일하면서도 대통령 표창을 받을 만큼 부친 박씨는 주위의 모범이었다.

“울릉도에서 가장 먼저 컴퓨터를 장만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박 아빠스는 어릴적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았다. 전화기에 라디오, 컴퓨터까지 분해·조립에 능했고, 신학생 시절에도 ‘울릉도에서 온 컴퓨터 잘 하는 학생’으로 소문이 날 정도였다. 이런 재능으로 박 아빠스는 1996년 당시 한국교회 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 개설을 주도했으며, 지금도 SNS 등 새 미디어 활용에 적극적이다.

원만한 대인관계를 드러내는 사연이 화제가 된 적 있다. 중3 졸업 당시 반장이었던 박 아빠스는 대구로 ‘유학’을 앞두고 있었기에 친구들과의 이별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졸업식 때 “20년 뒤에 다시 만나자”는 제안을 했고, 실제 그 만남은 이뤄졌다. 2004년 8월, 수도회 소속 사제로 성장한 박 아빠스는 수소문 끝에 은사와 친구들을 모아 감격의 재회를 나눴으며, 그 사연이 당시 지역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 역경에도 흔들림 없는 신앙

박 아빠스는 대구고등학교, 경북대 응용화학과(당시 공업화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왜관 수도원에 입회했다.

수도회 입회 전 대구 대명본당에서 교리교사로 활동했던 박 아빠스. 당시 본당 주임으로 입회를 이끌었던 ‘아버지 신부’ 박대종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는 박 아빠스를 “모든 일에 매우 모범적이고 명랑하며 일 잘하는 청년”으로 기억했다. 박 신부는 “워낙 대인관계가 원만해 모든 일을 유연하게 잘 이끌어 나갔다”며 “이런 사람이라면 우리 수도원에서 잘 살 수 있겠다 싶어 입회를 권유했다”고 말했다.

당시 동료 교리교사였으며, 현재까지도 교리교사를 맡고 있다는 신임희(마리아) 대구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박 아빠스에 대해 “맑은 샘물과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라고 회고했다. 신 교수는 또 박 아빠스가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솔선수범했으며, 늘 묵묵히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음을 주변에서 느껴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 아빠스가 걸었던 성소의 길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수도자가 된 후 1994년 막내 남동생이 군 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그만 세상을 떠났다. 이제 하나 남은 아들이었기에 박 아빠스를 봉헌하는 부모님의 선택이 쉽지 않았다고. 그러나 오직 하느님의 도우심을 믿고 아들의 뜻을 지켜주기로 힘든 결정을 내렸다. 박 아빠스의 부모님은 또한 막내아들의 선종으로 받은 위로금 및 연금을 전액 울릉도 도동유치원을 짓는데 기부하기도 했다.

■ 새 백년 향한 ‘희망의 징표’

수도 공동체 사이에서도 박 아빠스에 대한 평은 “온화하다”, “다방면에 재능이 많다”, “이공계열을 전공했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다분하다” 등 다양했다. 주위로부터 인기가 많은 너그러운 성품이지만, 일적인 부분에서만큼은 철두철미하다고.

서품 직후 아빠스 비서와 청·지원장을 맡았던 박 아빠스는 수도자 양성에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데 적극적이었다. MBTI와 합창 등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기운을 북돋워주는 프로그램 도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박 아빠스는 스스로 2010년 산티아고 순례를 수도생활 가운데 가장 큰 전환점으로 기억했다. 박 아빠스는 최근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달 동안 830km를 걷는 단순함 속에 기도하면서 수도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며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사람들과 길동무가 되어 친교를 나눈 뜻 깊은 날들이었다”고 말했다. 왜관 수도원 고진석 신부(구미 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 소장)는 “아빠스님께서 로마 유학 중 이탈리아, 독일, 헝가리, 프랑스 등 유럽의 대표적인 베네딕도회 수도원들을 방문한 적이 있다”며 “그런 경험들이 결국은 왜관 수도원의 새 비전을 세우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박대종 신부는 “아빠스에 선출된 것을 축하드리지만, 큰 십자가를 지시게 된 것”이라며 “잘해나갈 수 있도록 뒤에서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공동체의 기대를 한 몸에 업고 선출된 박현동 아빠스. 역경을 이겨내고 하느님께 순명했던 지난 삶에서 그 어떤 무거운 십자가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믿음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사랑과 친교로 뭉친 형제들이 늘 함께한다. 새 백년을 향해 나아가는 왜관 수도원에서 읽을 수 있는 ‘희망의 징표’다.

박현동 신임 아빠스(왼쪽)가 8일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를 예방하고 환담을 나누고 있다.
수도회에 입회하기전 대구대교구 대명본당에서 교리교사로 활동할 당시의 박 아빠스와 신임희 교수.
2001년 서품 후 울릉도 도동본당에서 첫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박 아빠스.
울릉중학교 졸업 당시 담임 선생님을 비롯한 친구들과 20년 뒤에 만나자는 약속을 지킨 박 아빠스(맨 오른쪽)의 모습.
연합회 시복시성 조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교황청 시성성을 방문,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가운데)과 함께한 박 아빠스. 이날 아마토 추기경은 수원가톨릭대에서 한글로 번역 후 선물한 자신의 저서 「예수 그리스도」에 친필 사인을 해서 박 아빠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박 아빠스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됐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순례 중 길동무가 된 다양한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기도 했던 박 아빠스의 모습.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부모님과 함께한 박 아빠스.

우세민 기자,정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