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서울대교구 신임 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임명] 서울대교구 연혁·현황 / 역대 교구장 / 임명 배경·향후 전망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2-05-15 수정일 2012-05-15 발행일 2012-05-20 제 2796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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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중심 서울대교구에 14번째 목자 탄생
◆ 서울대교구 연혁·현황

한국 최초의 교구이자 수도 서울을 관할하는 한국 천주교회의 중심 교구, 서울대교구의 역사는 곧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라 할 수 있다.

1831년 9월 9일 박해의 칼날이 지속되던 와중에 ‘조선대목구’로 설정되었던 것이 교구의 기원. 1882년 제7대 교구장 블랑 주교는 김범우 회장 집에 있던 명동공소를 토대로 종현본당(지금의 명동본당)을 설립했다. 1890년대 이후 약 30년 동안 간도지역의 사목까지 관할하던 조선대목구는 1911년 4월 8일 대구대목구를 분리하면서 서울대목구(당시 이름은 경성대목구)로 이름을 바꾸어 충청도 이북 지역만을 관할하게 된다. 또 1920년에는 함경도와 간도지역을 관할하는 원산대목구가 분리되었고, 1927년에는 평안도 지역의 평양지목구가 독립되었다. 1928년 1월에는 황해도를 감목대리구로 만들었다.

춘천대목구(1961년), 대전·청주대목구(1958년), 인천대목구(1961년)를 분리했던 서울대목구는 1962년 3월 10일 한국교회에 교계제도가 설립되면서 대교구로 승격됨과 동시에 춘천·인천·대전교구를 비롯 침묵의 교회인 평양·함흥교구를 포함하는 서울관구를 형성했다. 이후 수원·원주교구가 서울관구에 포함됐다.

사진은 한국교회의 눈부신 성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던 1984년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대회’ 모습. 한국교회, 그리고 서울대교구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딛고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번 제14대 서울대교구장 임명으로 한국교회가 진일보한 질적·양적 성장을 거두길 기원한다.

■ 주요연혁

▲ 183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 조선대목구 설정(초대 대목구장 : 브뤼기에르 주교)

▲ 1841년 조선대목구 주보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결정

▲ 1857년 최초의 성직자회의 개최 후 ‘장주교 윤시 제우서’ 반포

▲ 1882년 명동본당 설립

▲ 1911년 대구대목구를 분리하면서 ‘서울대목구’로 개칭

▲ 1931년 조선대목구 설정 100주년 기념 행사 및 전국 주교회의 개최

▲ 1942년 노기남 신부 첫 한국인 주교 서품, 서울대목구장 및 평양 춘천대목구장 서리 임명

▲ 1962년 교계제도 설립으로 대교구로 승격

▲ 1968년 김수환 주교 제12대 서울대교구장 임명

▲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개최(여의도광장)

▲ 1984년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대회 및 103위 시성식(여의도광장)

▲ 1989년 제44차 세계 성체대회 거행(여의도광장)

▲ 1996년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개최(잠실종합운동장)

▲ 1998년 정진석 대주교 제13대 서울대교구장 임명

▲ 2000년 서울대교구 시노드 개최 공식 선언

▲ 2003년 교구 시노드 폐막 교구장 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 반포

▲ 2006년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한국교회 두 번째 추기경 서임

▲ 2012년 염수정 주교 제14대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임명

■ 현황

2011년 12월 31일 현재, 서울대교구 관할지역은 서울특별시 전역과 황해도 전 지역으로 면적은 1만 7053.41㎢이며 관할지역 인구수는 1052만 8774명이다.

총 신자수는 143만 4894명으로 13.6%의 신자 비율을 보이고 있다. 성직자수는 추기경과 주교단을 포함 총 744명이며 본당수는 226개다.

◆ 서울대교구 역대 교구장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 이래 서울대교구의 역대 교구장은 브뤼기에르 주교를 시작으로 정진석 추기경까지 총 13명이다. 1942년 노기남 주교의 서울대목구장 임명으로 한국인 주교 시대가 열렸으며 제2대 성 앵베르 주교를 비롯 3명의 교구장이 성인품에 올랐다.

▲ 초대 교구장(1831~1835년) 브뤼기에르(Bruguiere,소蘇) 주교(프랑스)

1831년 9월 9일 조선교구 설정과 동시에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

1835년 10월 조선 입국 도중 만주의 한 교우촌에서 선종.

▲ 2대 교구장(1835~1839년) 성 앵베르(Imvert, 범세형) 주교(프랑스)

1835년 10월 교구장직 승계. 1837년 12월에 입국한 최초 서양인 주교.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순교.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

▲ 3대 교구장(1839~1853년) 페레올(Ferreol, 고) 주교(프랑스)

1845년 10월 12일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인도로 입국.

1853년 2월 3일에 과로·병으로 선종, 미리내 김대건 신부 무덤 옆에 안장.

▲ 4대 교구장(1854~1866년) 성 베르뇌(Berneu.장경일) 주교(프랑스)

1856년 초 입국. 1866년 병인박해 때 체포, 새남터에서 순교.

1900년 9월 5일 명동대성당 지하묘지에 유해 안치.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

▲ 5대 교구장(1866년 3월 7일~30일) 다블뤼(Daveluy, 안돈이) 주교(프랑스)

1845년 입국. 1866년 3월 7일 교구장직 승계 직후 체포, 3월 30일 충청도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 순교 자료를 수집하고, 한국 천주교회사를 서술하는 등 큰 업적을 남긴 교구장.

▲ 6대 교구장(1866~1884년) 리델(Ridel, 이복명) 주교(프랑스)

1861년 조선에 입국하여 활동하다가, 1866년 중국으로 탈출, 1869년 4월 27일 교구장으로 임명. 1877년 다시 조선에 입국한 뒤 체포, 이듬해 6월 중국으로 추방되었다가 프랑스로 귀국, 1884년 6월 20일 선종.

▲ 7대 교구장(1884~1890년) 블랑(Blanc, 백규삼) 주교(프랑스)

1876년 조선 입국 활동. 1884년 교구장 승계. 박해 이후 한국교회 재건에 노력하였으며, 명동대성당 건립 중 1890년 2월 21일 선종.

▲ 8대 교구장(1890~1933년) 뮈텔(Mutel, 민) 대주교(프랑스)

1880년 11월 조선 입국. 1890년 교구장 임명. 1891년 로마에서 주교 성성식을 갖고 재입국, 명동대성당 완공. 교세 확대와 조선 순교자들의 시복에 노력. 1925년 7월 5일에 79위 복자를 탄생시킴. 1933년 1월 23일 선종.

▲ 9대 교구장(1933~1942년) 라리보(Larriveau, 원형근) 주교(프랑스)

1907년 5월 21일 입국. 1933년 1월 23일 교구장 승계. 1958년 초대 대전교구장 역임. 1974년 8월 12일 선종.

▲ 10대 교구장(1942~1967년) 노기남(바오로) 대주교

1942년 12월 20일 주교 성성. 한국인 최초의 주교이자 교구장. 광복 전후 한국역사의 격동기에 교회 건립 노력에 헌신. 1962년 한국 천주교회에 교계 제도가 설정되는 데 기여. 1984년 6월 25일 선종.

▲ 11대 교구장(1967~1968년)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

1963년 수원교구 초대 교구장 임명, 같은 해 10월 주교 성성. 1967년부터 1년간 서울대교구장 서리를 맡았으며, 1973년 11월 7일 대주교 승품 동시에 광주대교구장 임명.

▲ 12대 교구장 (1968~1998년)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

1966년 마산교구 초대 교구장 임명, 같은 해 5월 주교 성성. 1968년 서울대교구장 임명 동시에 대주교로 승품.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 서임.

▲ 제13대 교구장(1998년~2012년 재임) 정진석(니콜라오) 추기경

1970년 6월 청주교구장 임명, 같은 해 10월 주교 성성. 1998년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임명, 교구장 착좌식. 2006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한국교회 두 번째 추기경 서임.

◆ 임명 배경·향후 전망

"선교·생명 중시하는 교구 기존 기조 이어갈 것"

10여 년 총대리 주교 직무 높이 평가

교구 출신 교구장·인화 중심 성품으로

700여명 사제단 일치·단결 유도 기대

10일 오후 7시 바티칸은 제14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염수정 대주교를 발표했다.

신임 서울대교구장의 임명을 둘러싸고 여러 명의 주교들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바티칸의 결정은 ‘교구행정’, ‘본당’ 분야에 전념하며 역량을 쌓아온 염수정 대주교였다.

‘지구력과 판단력으로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성격’, ‘성실과 노력의 소유자’라는 세간의 평가처럼 염수정 대주교가 새로운 서울대교구의 수장으로 낙점된 것은 정진석 추기경과 보조를 맞추면서 10여 년간 서울대교구의 전체 살림을 성공적으로 꾸려왔던 것이 높게 평가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교구장 직속 생명 전담기구인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를 이끌면서 한국사회 안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바로잡고자 하는 단호한 교회의 목소리를 보여주었던 점과 함께 최근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유지를 잇는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 설립 등을 추진력 있게 이뤄낸 것 등이 인정을 받았다는 평이다.

염수정 대주교 임명에 대한 교구 내 분위기는 무엇보다 ‘교구 출신 교구장 임명’이라는 점에서 환영한다는 분위기다.

교구 사정에 밝은 만큼 업무적인 면이나 사제단 내의 소통 흐름 면에서도 도움이 클 수 있다는 입장에서다.

문화홍보국장 허영엽 신부는 “제10대 교구장을 지냈던 노기남 대주교 이후 오랫동안 타교구에서 교구장이 임명돼 왔던 점을 돌아볼 때 염수정 대주교는 총대리 주교 자리에서 교구 사목을 이끌다가 교구장직을 맡았기 때문에 사제들이 더욱 반기는 분위기”라고 밝히고 “앞으로 교구 사제단이 더욱 일치·단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향후 교구의 행보와 관련해서는 정진석 추기경이 지녔던 교구 운영 방향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임명 소감에서 밝혔던 것처럼 정진석 추기경이 주창했던 ‘2020 운동’ 등 선교 분야와 생명 분야에 전력하는 서울대교구의 기조가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 대외적으로는 ‘생명의 신비상’ 제정 등 그간 생명위원회 활동을 통해 반생명 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고조시켰던 추진력에서 보여지듯 필요시 소극적으로 대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더불어 한국교회가 아시아 복음화에 있어서 ‘선봉장’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교황청의 기대에 부응해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2010년 아시아평신도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던 경험 등으로 이미 ‘아시아 복음화’를 향한 열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기대도 크다.

염 대주교는 말하기보다 경청하며 인화(人和)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민적이고 털털한 인품의 염 대주교는 그런 면에서 700여 명의 교구 사제단 일치와 소통에 더욱 힘을 쏟으며 앞장설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