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서울대교구 신임 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임명] 삶과 신앙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2-05-15 수정일 2012-05-15 발행일 2012-05-20 제 2796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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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쇄신과 발전·나눔문화 확산에 헌신
사제 생활 대부분 본당·행정분야에서 활동
총대리 주교로 10년 동안 교구 살림 이끌어
생명문화 확산·성미술 저변 확대에도 앞장
넉넉한 품성 지닌 소박한 목자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된 염수정 대주교를 한 번이라도 만나본 이라면 그의 독특한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 강한 흡인력에 쉽게 감화되고 만다. 축구, 수영 등 소박한 취미를 지니고 지금도 등산과 자전거타기를 즐기는 염 대주교는 넓은 포용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어 주위에 늘 따르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염 대주교는 아울러 평생 자신을 낮추며 주어진 소명을 묵묵히 실천하는 ‘순명’을 온몸으로 보여 온 사제로 평가받는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소탈함과 사목 활동에서 보여준 성실함은 염 대주교가 지난 42년 간 주님의 충직한 종으로 살아오는데 디딤돌이 됐다. 그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도 염 대주교에 대해 “인내할 줄 알고 겸손하게 살아온 덕망 있는 사제”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염 대주교가 지금껏 사목자로 적잖은 무게의 십자가를 감내해낼 수 있었던 데는 뿌리 깊은 신앙이 밑거름이 됐다는 점에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염 대주교 집안은 5대조 할아버지인 파주 염씨 의암공 덕순(요셉, 1768~1827) 옹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임으로써 한국교회와 첫 인연을 맺는다. 당상관 통정대부 관직에 있던 염덕순은 박해를 피해 관직을 버리고 배티성지가 있는 현 충북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 사기장골 교우촌 옹기마을로 숨어들어 신앙을 이어나갔다.

4대조인 염석태(베드로)는 1850년 5월 진천 감영에서 순교했고 그의 부인인 김마리아도 1850년 9월 30일 경기도 죽산성지에서 순교함으로써 한국교회사에 깊은 화인을 새겼다. 3대조부터 순교한 부모의 시신을 찾기 위해 경기도 안성 삼죽면 일대로 옮기면서 정착하게 된 그의 일가는 염 대주교까지 6대째 천주교 신앙을 이어오고 있다. 할머니 박 막달레나 여사와 어머니 백금월(수산나·1995년 선종)씨는 자식 중 성직자가 탄생할 수 있도록 매달 안성본당에서 미리내, 감곡성당으로 순례하며 첫 첨례를 지켰다.

누구보다 염 대주교의 삶과 신앙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는 어머니였다. 그의 모친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탈출기 등 성경을 재미있게 이야기로 설명해주는 등 신앙적으로 성장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식들에게는 사제가 되라는 표현 한 번 하지 않고 매일 같이 집안에서 사제가 나올 수 있도록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이렇듯 그의 집안에 흐르는 면면한 신앙의 힘은 5남1녀인 염 대주교 형제 대에 이르러 3남인 염 대주교를 시작으로 4남 수완(66·서울 문정동본당 주임), 5남 수의(63·서울 잠원동본당 주임) 등 ‘3형제 성직자’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아흔 평생 슬하의 세 아들을 하느님 대전에 봉헌하고 묵묵히 기도로 뒷받침했던 모친은 선종하는 순간까지 사제들을 위한 사랑과 희생의 삶으로 신앙의 모범을 보였다. 그의 평소 뜻에 따라 장례 조의금으로 들어온 3200여 만 원이 교구 사제양성 후원기금으로 봉헌됨으로써 사제를 위한 기도와 희생의 삶이 또 다른 사제성소 육성으로 열매 맺는 아름다운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 풍부한 본당 사목 경험과 교구 행정에 밝은 주교

“아멘. 오소서, 주님 예수님!”(Amen. Veni, Domine Jesu. 묵시 22,20)

2001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후 정한 사목표어는 교회와 세상을 대하는 염 대주교의 눈길과 생각을 잘 보여준다.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과 사랑이 드러나고,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께 희망을 걸고 살아가도록 일하겠다”는 그의 뜻은 사목 활동 곳곳에서 역동적인 힘으로 드러났다.

1970년 사제품을 받은 염 대주교는 이태원·장위동·영등포본당 등에서 주임신부로 사목했고, 가톨릭대 성신교정 사무처장과 교구 사무처장 등을 거쳤다. 사제 생활 거의 대부분을 일선 본당과 행정 두 분야에서만 전념하며 준비된 교구장으로서 역량을 쌓아온 셈이다. 2002년에 주교품을 받고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로 10년째 서울대교구 살림을 이끌어온 그는 자신의 장점을 사목에 잘 접목시켜 교구의 내실을 다지는데 큰 몫을 했다. 특히 서울대교구가 새 천년기에 들어서 교구 발전과 쇄신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교구 시노드, 교구장 대리제도 등이 제대로 뿌리내리는데 남다른 역량을 발휘함으로써 ‘교회 행정의 달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2005년 10월 5일 출범한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를 이끌며 자살 낙태 배아복제 반대 활동에 대한 사회와 학계의 관심을 고조시키는가 하면 2008년 2억5000만 원 상금의 가톨릭 미술 공모전을 제정해 성미술의 저변을 넓히는 등 신자들의 삶에 밀착된 사목에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2010년 2월 설립된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과 옹기장학회 이사장을 맡아 교회 안팎에 나눔 문화를 확산시켜 나가는데 능력을 발휘해왔다.

이렇듯 주요 보직을 거치며 역대 교구장 가운데 교구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인물로 통하는 염 대주교가 교구장에 임명됨으로써 교구 발전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2012년 4월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과 한국예탁결제원 KSD 나눔재단은 국내외 소외계층 개안수술을 위한 ‘사회공헌 파트너십 협약’을 맺었다.
2011년 8월 옹기장학회 제18회 장학금 수여식.
새 주교의 문장. 2002년 1월 25일 주교서품식장에는 신임 염수정 보좌주교의 대형 문장이 걸려 경축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2010년 12월 서울대교구 생명수호주일 및 생명위원회 설립 5주년 기념식에서 염수정 대주교(맨 오른쪽) 등 관계자들이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2002년 주교서품식. 축하연 케이크를 자르고 있는 당시 서울대교구 주교단. 왼쪽부터 강우일 주교, 염수정 주교, 정진석 대주교, 이한택 주교, 김수환 추기경.
1965년 염수정 대주교가 군복무할 때 찍은 가족사진. 뒷줄 군복 입은 이가 염 대주교. 염 대주교 왼쪽으로 동생 수완·수의 신부.
목동본당에서는 2001년 12월 16일 염수정 보좌주교 임명을 축하하며 축하식을 가졌다.

◆ 염수정 대주교 약력

▲ 1943년 12월 5일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에서 출생

▲ 1970년 12월 8일 사제 수품

▲ 1971년~1973년 서울 불광동본당, 당산a동본당 보좌

▲ 1973년~1977년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 교사

▲ 1975년 2월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석사(상담심리학 전공)

▲ 1977년~1979년 서울 이태원본당 주임

▲ 1979년~1980년 4월 필리핀 아시아 극동 사목 연수원 수료

▲ 1980~1985년 서울 장위동본당 주임

▲ 1985~1987년 서울 영등포동본당 주임

▲ 1987년~1992년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대신학교) 사무처장

▲ 1992년~1998년 서울대교구청 사무처장

▲ 1998~2001년 10월 서울대교구 제15지구장 겸 목동본당 주임

▲ 2001년 12월 1일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 임명(티비우카 명의주교)

▲ 2002년 1월 25일 주교 수품

▲ 2002년 10월 17일~2005년 10월 13일 주교회의 상임위원

▲ 2002년 10월 2일~현재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

▲ 2011년 10월 12일~현재 주교회의 상임위원

▲ 2012년 5월 10일 서울대교구장 임명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