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복음생각] 포기하는 삶 / 허규 신부

허규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입력일 2015-10-06 수정일 2015-10-06 발행일 2015-10-11 제 2964호 1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연중 제28주일(마르코 10,17-30)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한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이야기는 가르침을 전해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부르심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복음서는 보통 예수님께서 만나고 부르는 이들이 자신의 것을 모두 버려두고 따랐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그렇지 못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한 청년은 예수님을 찾아와 예의를 갖추고 영원한 생명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답은 한 분이신 하느님과 계명에 대한 것입니다. 이 답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 사명이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언, 횡령에 대한 금령과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하느님 뜻을 따르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예수님 말씀은 십계명에서 후반부에 나오는, 곧 인간들 사이의 사랑 실천을 나타내는 계명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부족한 것은 하느님에 대한 계명입니다.

청년은 이 모든 것들을 어려서부터 모두 지켜왔다고 자신있게 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가진 것을 모두 팔아 나누어 주고 따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청년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복음서는 그가 부자였기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청년에게 부족한 한 가지. 계명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성실하게 따랐던 청년이지만,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청년은 하느님을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씀에 순응하지 못합니다. 그의 부는 이웃을 사랑하는데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지만,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는 걸림돌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영원한 생명은 하느님 계명이나 하느님의 나라, 그리고 구원과 같은 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부자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이 사람의 편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달려 있다는 표현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에 의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혜서는 이 모든 것들을 ‘지혜’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나는 지혜를 왕홀과 왕자보다 더 좋아하고, 지혜에 비기면 많은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며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석도 지혜와 견주지 않았다.” 하느님의 지혜는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다는 지혜서의 말씀은 그것을 듣는 이들도 역시 그렇게 할 것을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은 사람에게 가장 좋은 일이라는 것이 체험에서 오는 지혜서의 생각입니다.

무엇인가를 포기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욱이 그것이 나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편으로 재화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데에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물론 어려운 이웃과 나누고 그들을 돕는데 재화는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들은 조금은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하느님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 나의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그물’을 포기했던 제자들, 자신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예리코의 눈먼 이… 이들은 자신의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이들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슬퍼하며 떠나간 부자 청년의 모습과는 대조적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부르시는 이야기에서 공통적인 것은 ‘포기’입니다. 물질적인 것이든 아니든 온전하게 따르는 삶을 위해 내려놓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도 물론 중요하지만 오늘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것이 없다면 이웃 사랑 역시 무의미 하기 때문입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허규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