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광복·분단 70주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간담회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5-09-02 수정일 2015-09-02 발행일 2015-09-06 제 2960호 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남북 화해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이해와 용서의 자세”
염수정 추기경은 남북 화해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자세는 이해와 용서”라며 “사회 각 분야에서 더 많이 대화하고 이해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복 70주년이면서 분단 70주년이 되는 2015년은 우리 민족에게 기쁨과 동시에 슬픔으로 다가온다. 남북 분단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한국교회도 고민해야만 하는 이유다.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아 국가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행사들이 남과 북 각지에서 따로따로 진행됐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제는 차분한 자세로 8·15의 의미를 정리해볼 때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8월 31일 오후 2시 서울 명동 교구청 3층 회의실에서 가톨릭신문 등 교계 언론과 간담회를 갖고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이하는 소회와 각오, 남북한 신자들을 위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번 간담회에는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정세덕 신부, 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 평화나눔연구소 소장 임강택(마르티노) 박사 등이 함께했다.

다음은 염 추기경과의 일문일답.

- 8월 25일 남북 고위급 접촉이 성공적으로 타결됐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의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제기되는데 추기경님께서는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 기도하는 마음으로 남북 접촉 과정을 끝까지 지켜봤습니다. 40여 시간 만에 어렵게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에 저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기쁘게 생각하고 감사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군사적 수단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심어줬습니다. 이렇게 남북한은 작은 노력을 바탕으로 서로 신뢰를 회복하고 평화를 만들어 가야할 것입니다.

이번 합의사항을 남북한 당국이 진심을 담아 실천해 나가기를 바라며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적 문제와 남북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교류협력 사업들이 먼저 협의되면 좋겠습니다.

- 광복과 분단 70년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로서 개인적인 소회를 들려주십시오.

▲ 우리 민족은 1945년 갑자기 찾아온 광복 이후 분단과 전쟁이라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지난 70년간 아주 슬기롭게 이런 어려움에 대처해 왔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내며 삶의 질이 높아져 이제는 다른 나라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합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전구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광복을 맞이한 지 70년이 되도록 남북한이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앞에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또한 남한은 어느 정도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만 북녘 동포들은 여전히 경제·사회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북녘 동포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북한 교회에 대한 기억이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도 있습니다.

-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으면서 신자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 평화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 가지고 계신 민족화해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구상을 소개해 주십시오.

▲ 우리는 지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DMZ 사태는 끊임없이 우리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봅니다. 저는 이런 현실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늘 고민하고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세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기도해야 합니다. 분노와 적대감, 선입견을 내려놓고 하느님 안에 있는 우리는 하나임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반성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남북이 형제애를 회복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 알아야 하고 미래에 함께 살기 위해서는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지난해 8월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며 “용서야말로 화해로 이르는 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형제들을 아무 남김없이 용서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셋째, 나눠야 합니다. 나눔은 아주 구체적이고 삶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더 있어서가 아니라 남북한은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북한 교회의 회복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그 실천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북한 교회의 회복은 민족복음화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에도 큰 기여가 될 것입니다.

- 추기경님께서는 서울대교구장이면서 동시에 평양교구장 서리를 맡고 계십니다. 북한이나 북한 교회를 위해 개인적으로 특별히 기도해 오신 것이 있는지요.

▲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만날 수 없고 함께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는 북녘의 신자들은 항상 제 마음 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현실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저는 성무일도 중에 또 매 미사 중에 북녘의 신자들과 함께하고자 기도합니다. 식사할 때도 항상 북한 주민들이 더 이상 먹는 문제로 고통 받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매일 묵주기도도 바칩니다.

- 서울대교구는 분단과 광복 70주년을 맞아 북한 지역의 본당을 기억하는 기도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운동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북한지역에는 한국전쟁 발발 전 54개의 본당과 5만 명이 넘는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한 북녘의 신자들과 성직자, 수도자들의 신앙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 북한지역에 성당과 신자들이 실제로 얼마나 남아 있는지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불필요한 논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북한에는 여전히 54개의 본당이 설정돼 있고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신자들이 그 어딘가에 분명히 실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북한의 교회를 기억하는 구체적 실천운동으로 ‘내 마음의 북녘성당 갖기 운동’을 펼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한 신자들이 북한의 한 본당을 택해 그 본당의 영적인 신자가 돼 그 본당이 다시 회복되기를 기도하고 현재 북한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과 믿음 안에 하나돼 나눔을 실천하자는 취지입니다. 북한의 본당은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재 그곳에서 드러나지 않게 순교자적인 삶으로 신앙을 지켜나가는 분들을 기억하고 함께하자는 것입니다.

- 추기경님께서는 북한 동포와의 나눔을 보다 활발하게 추진하기 위해 ‘우니타스’라는 별도의 법인을 설립하셨습니다. 그 취지는 무엇이며 법인을 통해 앞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까.

▲ 우니타스(Unitas)는 라틴어로 하나 되자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형제애를 나누기 위한 일을 할 것입니다. 남북은 한 형제입니다. 형제 간에는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는 정치적 이념이나 사상을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북한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마음이 너무 앞서다 보니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우니타스라는 전문 지원기구를 설립했고 앞으로 우니타스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전문적 개발협력사업을 펼치려고 합니다. 과거와 같이 식량과 의약품, 생필품 등 필요한 물자만을 전달할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어려움을 이겨내 자립할 수 있는 도움과 협력을 나누고자 합니다.

- 우리 사회 전반에 남북 화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와 관련해 신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 우리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자세는 이해와 용서입니다. 더 나아가 교황님께서 올해 12월 8일부터 시작하는 ‘자비의 희년’을 맞아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하느님을 닮은 자비로운 사람이 돼야 합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더 많이 대화하고 이해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야겠습니다. 서로 편을 갈라 대립하고 반목하면서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노력 없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마음을 닮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이 변화돼야 합니다. 남북한의 갈등과 대립을 보며 미워하거나 분노하지 말고 한국교회의 수호자이신 성모님과 함께 기도합시다. 기도는 우리를 미움과 증오, 앙갚음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합니다.

-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추기경님 마음 속에 살아 있으리라 믿는 북녘의 신자들에게 한 말씀 들려주십시오.

▲ 제 집무실에는 지난해 8월 서울 명동성당을 방문하신 교황님께 드렸던 휴전선 철조망으로 만든 가시관과 평양 관후리 주교좌성당 모형이 놓여져 있습니다. 이 철조망은 1953년 정전협정이 맺어진 후 DMZ에 설치됐던 것입니다. 이 철조망이야말로 분단된 한반도의 고통과 아픔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고 계신 모습을 기억하며 평양 관후리 주교좌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마음으로 북녘의 신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미사 봉헌은 물론 성체도 모시지 못하는 북녘의 신자들은 항상 제 기억 속에 있습니다. 북녘의 형제자매들에게 시련은 우리의 믿음을 더 강하게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고 북녘의 신자들을 절대로 잊지 않으십니다. 저와 남한의 신자들은 북녘 신자들을 잊지 않고 함께 갈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 민족이 분단의 아픔을 이겨내고 화해와 일치를 이뤄 함께 주님을 소리 높여 찬미할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북녘 신자들도 우리 민족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청합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8월 31일 오후 2시 서울 명동 교구청 3층 회의실에서 광복·분단 70주년 기념 간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평화나눔연구소 소장 임강택 박사,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정세덕 신부, 염수정 추기경,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