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박물관 문화 순례]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 (2)

이준성 신부(서울 중림동약현본당 주임),사진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 제공
입력일 2015-08-25 수정일 2015-08-25 발행일 2015-08-30 제 2959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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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한국교회 첨례표 소장
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물인 을축년 첨례표. 전례주기를 신자들에게 알려줄 뿐만 아니라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성경직해」 표지.
「성경직해」 내용.
서울 중림동약현성당 내에 자리하고 있는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은 순교자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한국천주교회사와 124년 역사의 약현성당을 설명하는 안내문들과 그에 따른 소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러한 유물들 중에서도 ‘을축년(1865년) 첨례표’는 더욱 소중하고 특별한 유물이다. 한희동(그레고리오) 신부(1963년 서품, 2003년 선종)가 기증한 ‘을축년 첨례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천주교회의 첨례표이기 때문이다.

‘첨례’란 ‘축일’의 옛말로 첨례표는 천주교회의 한 해 축일표라 할 수 있다. 천주교회는 고유한 1년의 시간 주기를 갖고 있다. 교회력(전례력) 또는 전례주년이라고 불리는 이 1년의 시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즉 주님의 축일을 중심으로 하면서, 여기에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여러 성인의 축일이 더해져 전례력이 만들어지게 된다. 천주교 신자들은 전례력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며 신자로서의 신심을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교회 고유의 전례력을 신자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달력에 적용해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첨례표다.

첨례표에는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탄생, 죽음, 부활, 승천, 성령 강림 등 주님의 축일과 교회의 중요한 사건 축일이나 인물들을 기념하는 축일이 기록되는데 1월부터 12월까지 날짜순으로 기록돼 있다. 또한 첨례표에는 축일뿐 아니라 신자들이 지켜야 할 여러 지침도 수록돼 있어서 첨례표는 한 해를 살아가는 신앙생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특정년도의 첨례표는 그 시대에 실제로 행해진 미사나 전례를 추정하게 하며 이외에도 소제일(금육)과 대제일(단식), 축일(주님 축일과 성모 축일), 성인과 천사 축일, 신심 단체 활동들을 통해 당시 신자들의 구체적인 신심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을축년 첨례표에는 1865년 1월부터 1866년 3월까지의 주요 축일과 기념일 그리고 매괴회, 성의회, 예수 성심회, 성모 성심회, 전교회 등 신심 단체들이 기도를 시작하는 날이 매월 표시돼 있다. 제일 끝부분 여백에는 예수 성심회 규칙도 수록돼 있다. 따라서 을축년 첨례표는 조선 후기 천주교인들의 실체적인 신앙생활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자료다.

그러면 조선시대 신자들이 어떻게 첨례표를 만들어서 사용했을까? 1790년 경에 복자 최창현 요한에 의해서 한글로 번역된 「성경직해」와 조선시대의 달력이었던 책력을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성경직해」는 1년 동안의 주일과 첨례를 소개하고, 각 주일과 첨례에 해당하는 성경 말씀과 그에 대한 해설을 수록한 책이다. 조선시대 달력은 책의 형태를 가지고 있던 ‘시헌력’을 사용했다. 중국 명나라 때 선교사 아담 샬이 24절기와 하루의 시간을 정밀하게 계산해 만든 역법이었다.

조선시대 신자들은 이 「성경직해」와 시헌력을 이용해서 첨례표를 작성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춘분이 언제인지 알 수 있었으므로 부활 첨례날(일반적으로 춘분 후 첫 보름 다음에 오는 주일)을 알 수 있었고, 부활 첨례날을 기준으로 나머지 축일을 계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지를 알 수 있었기에 예수 성탄 대축일도 알았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또한 을축년 첨례표를 자세히 보면 1월부터 12월이 아닌 1865년 1월부터 1866년 3월까지 적혀 있다. 보통 이듬해 3~4월까지를 함께 다루고 있는데, 왜 이렇게 했을까를 생각해 봤다. 아마도 다음 해의 첨례표 일부를 신자들에게 미리 알려준다는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바로 부활 신앙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즉 첨례표를 보면 예수 승천까지만 수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부활 시기까지만 수록하고 있는 것이다. 첨례표가 만들어질 때, 다음 해의 부활 시기까지 신자들이 기억하도록 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 첨례표에는 두 번의 부활 시기가 수록돼 있는 것이다. 첨례표는 단순 전례주기를 알려주는 역할보다는 신자들에게 부활의 중요성과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문의 02-312-5220, 02-362-1891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

이준성 신부(서울 중림동약현본당 주임),사진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