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99) 행운, 그 참 묘한 녀석일세!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5-08-25 수정일 2015-08-25 발행일 2015-08-30 제 2959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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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로또’라는 것이 한국에 갓 실행되던 때, 어느 수도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곳은 식성이 좋아도, 너무 좋은 젊은 남자 예비 수도자 15명 정도가 사는 공동체입니다. 평소 그 수도원에서는 말 그대로 쌀독에 언제나 쌀이 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그 당시를 함께 살았던 형제들의 표현을 빌리면, 외부에서 손님이 오셔서 간식으로 과일을 가져오시면 그것이 냉장고 안에 들어가자마자 이내 사라져버리고 빈 껍질만 앙상하게 남아 있더랍니다.

그런 공동체에서 그 날은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는지, 원장 신부님의 허락을 받아 오랜만에 시장에 가서 피자와 통닭을 사가지고 와서 형제들이 함께 먹었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형제가 피자와 통닭은 식탁 위에 놓는데, 영수증 옆에 무슨 숫자가 쓰여 있는 종이 15장 정도가 있더랍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니, 그게 ‘로또’였답니다. 왜 15장이냐면, 일인당 통닭을 한 마리씩 먹으려고 15마리를 샀고, 그 통닭집 경품으로 닭 한 마리에 로또 한 장이라 15장이었답니다.

간식 시간이 되어 형제들이 함께 모인 후 피자와 통닭을 먹는데, 로또 15장을 발견한 형제가 원장 신부님께,

“원장 신부님, 로또 15장을 사은품으로 주시던데요!”

그러자 원장 신부님은 단호한 목소리로,

“우리 삶은 일확천금이나 대박을 바라지 않아요. 그저 묵묵하게 우리 길을 가는 거지요. 그런 거 필요 없어요.”

형제들 전원,

“와!!”

암튼 그 날 즐거운 회식이 다 끝나고 뒷정리를 다 한 후 모두가 아무 일 없는 듯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로또 추첨을 하는 토요일 날 저녁!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날 저녁 시간에 자유롭게 TV를 시청할 수 있는 날! 그런데 그 날, 15명의 형제들이 원장 신부님 몰래 치밀하게 계획을 짠 모양입니다. 로또 방송을 틀어 놓은 후, 번호가 하나, 하나 나올 때마다 소리를 지르기로. 번호 하나가 나오자, 형제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답니다. 그리고 형제들이 기도하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기도 하고. 그리고 두 번째 번호가 나오자, ‘와, 또 맞았다’ 하며 비명을 질렀답니다. 그런 다음 세 번째 번호, 네 번째 번호, 다섯 번째 번호가 나오자, 울먹이는 연기까지 했답니다. 그리고 마지막 번호가 나오자, 15명의 형제들이 일제히,

“와, 하느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그러자 원장 신부님이 방에서 뛰쳐나와 공동방으로 왔고, 형제들은 원장 신부님을 보자마자 그냥 서로 얼싸안고 빙글빙글 돌았답니다. 그러자 원장 신부님도 얼굴이 새빨개지고, 흥분한 목소리로,

“진짜, 진짜, 진짜 로또 맞았어?”

형제들은 원장 신부님과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며, 원장 신부님을 서로 끌어안다가, 원장 신부님 얼굴을 쳐다보며,

“로또요? 원장 신부님이 그저 묵묵히 우리 길 가라고 해서 그 날, 버렸는데요!”

“우리는 오늘 누군가가 로또 맞은 사람이 있을 거 같아서, 그 사람이 좋은 일 좀 했으면 하는 마음에, 소리를 지른 건데요!”

암튼 그 일로 인해서 15명의 형제들은 며칠 동안 대침묵 속에서 지내야 했다고 합니다. 행운, 그 참 묘한 녀석입니다. ‘아니다, 아니야, 아닐거야’ 하면서도, 때로는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행운! 하느님 안에서 이리 행복한 삶을 살아도, 때로는 행운이라는 녀석에게 귀가 솔깃하게 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