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오기선 신부 선종 25주기… 30일 용인 성직자 묘역서 기념미사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5-07-22 수정일 2015-07-22 발행일 2015-07-26 제 2954호 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가난한 고아·피난민 끌어안았던 ‘고아들의 아버지’
해방 직후 ‘충남애육원’ 운영하며 아이들 돌봐
유지 이어 2005년 ‘오기선 요셉 장학회’ 설립
1960년 4월 19일 충남애육원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오기선 신부(둘째줄 가운데 검은 옷).
‘가톨릭 매스컴 종사자들의 대부’, ‘한국교회 첫 형제 신부’, ‘실천적인 순교자 현양 운동가’ 등 오기선 신부(요셉, 1907~1990)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오 신부가 선종한지 25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이름은 바로 ‘고아들의 아버지’이다.

오기선 신부가 고아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해방 직후 충남도청 사회과에서 직영하던 고아원 ‘대전학원’을 인수하면서부터다. 당시 대전 대흥동에서 사목을 했던 그는 고아원 명칭을 ‘충남애육원’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고아들의 대부로 나섰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고아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오 신부는 부산 송도의 허름한 판잣집에 고아원을 짓고 아이들을 친부모처럼 보살폈다. 이 당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아원의 규모는 엄청나게 확대됐다. 무려 3000여 명의 고아들이 오기선 신부를 ‘아버지’로 불렀을 정도였다.

그는 대전으로 돌아와 충남사회사업연합회장으로 11년을 일했고, 1963년에는 고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아들 신부인 김정수 신부(대전 내동본당 주임)는 한 기고를 통해 “오 신부님은 가난한 고아와 어려운 피난민들을 끌어안고 사신 분”이라고 회상했다.

또 다른 아들 신부인 오웅진 신부(예수의꽃동네형제회 총원장)는 오 신부에게 감명 받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생애를 바치기로 결심했다.

고아들을 사랑했던 오 신부의 마음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인을 기리는 이들이 함께 설립한 ‘오기선 요셉 장학회’를 통해서다. 장학회는 황인국 몬시뇰과 오웅진 신부, 김정수 신부, 장영식 신부 등이 주축이 돼 오 신부 선종 15주기인 2005년에 창립됐다. 이후 장학회는 가난해서 공부하지 못하는 고아와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오기선 요셉 장학회는 7월 30일 오전 11시 경기도 용인 천주교공원묘지 성직자 묘역에서 ‘오기선 신부 추모 25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경기도 용인에서 1907년 태어난 오기선 신부는 1932년 사제품을 받고, 1937년 프란치스코 재속3회를 세웠다. 1971년 은퇴 후에는 103위 복자 시성운동과 성지 발굴 등에 힘을 쏟았고, 마카오와 필리핀 등에 김대건 신부의 동상을 건립하는 등 순교자 현양운동에도 앞장섰다.

이지연 기자 (mar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