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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성공회 대주교가 쓴 사도신경 해설서

김근영 기자
입력일 2015-07-15 수정일 2015-07-15 발행일 2015-07-19 제 2953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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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하는 삶-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
‘신뢰’ 개념 중심으로 신앙 해설
‘인간과 관계 맺는 낯선 이’ 설명
신뢰하는 삶-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 / 로완 윌리엄스 지음/김병준·민경찬 옮김/224쪽/1만3000원/비아

사도신경 해설서는 아무나 쓰지 못한다. 대개 공인된 신학자와 교회 지도자가 자신의 신학·신앙여정이 무르익었을 때 사도신경을 설명하고, 신학적 견해와 신앙을 표명한다. 칼 라너 신부의 「그리스도교 신앙입문」(이봉우 옮김/626쪽/분도출판사)이나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그리스도 신앙-어제와 오늘」(장익 옮김/375쪽/분도출판사) 등이 그런 사례다. 이 작품들은 단순 신앙입문서를 뛰어넘어 교회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며 한 시대의 신학과 신앙적 노선을 대표한다.

영국 성공회 최고위 성직자이자 세계 성공회 공동체(the Anglican Communion)의 상징적 수장이었던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의 사도신경 해설서가 국내 번역됐다. 윌리엄스 대주교는 전 영국 캔터베리교구장으로, 지난 2005년 캔터베리대성당에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설명했다. 이 책은 당시 강연내용을 바탕으로 쓴 사도신경 해설서다.

성경과 교회사에 대한 기본지식 없이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데다 그리스도교 전통에 대한 사려 깊은 해석과 정신분석학·문학·철학 등 현대사상과 긴밀히 대화하고 있다. 특히 ‘신뢰’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출발점과 영원한 생명 등에 대한 주제를 일관성 있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뢰’란 인격적 만남 없이 일어나는 막연한 믿음이나 특정 대상을 향한 맹목적 믿음, 어떤 사물의 존재 유무를 따지는 믿음이 아니다. 신뢰는 아무 조건 없이 누군가 ‘나’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것과 누군가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출발한다.

책에서 저자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접근하는 방식은 세부사항을 분석하기보다 ‘큰 그림’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이 흐름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용법인 ‘전적인 타자’(Wholly Other) 개념을 우회하고,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가 언급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거대한 협곡’에 대한 이미지의 위험성에서 벗어난다. 이로써 저자가 소개하는 하느님은 ‘인간과 관계 맺는 낯선 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드러난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신론·그리스도론·교회론·성령론·교회론·창조종말론 등이 딱딱하게 구분되지 않고 차례대로 중첩된다. 20세기 위대한 시인·화가·판화가인 데이비드 존스의 삽화들도 이 책을 천천히 곱씹는 데 도움을 준다.

김근영 기자 (gabin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