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복음생각] 죽음도 넘어서는 희망 / 허규 신부

허규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입력일 2015-06-30 수정일 2015-06-30 발행일 2015-07-05 제 2951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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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마태오 10,17-22)
오늘은 우리나라의 첫 번째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첫 번째 방인(邦人) 사제라는 점에서도 충분히 기억할만한 일이긴 하지만, 그는 신앙의 순교를 통해 성인품에 오른 분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평신도들로부터 신앙을 시작한 나라입니다. 공부를 하면서 신앙을 키우고 사제의 필요성을 느낀 선조들은 젊은이들을 마카오로 보내 사제가 되는 교육을 받게 합니다. 불과 16세에 동료들과 함께 마카오에서 공부를 마치고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님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신앙의 선조들의 열정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열정은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증거하는 일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신앙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았으며 이 순교자들의 피는 지금 우리 교회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박해와 순교를 이야기합니다. “내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고” 많은 고난을 겪으리라는 마태오 복음서의 말씀은 미래를 위한 예수님의 예언이기도 하고 또 당시에 있었던 신앙인들에 대한 박해를 기억하게 합니다.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위로합니다. 아버지의 영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난을 견디어 낸 이들에게 구원을 약속합니다. 이것이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신약성경에서 환난은 박해의 상황을 나타냅니다. 로마서의 말씀은 환난이라는 상황에서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절대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표현이지만 바오로 사도는 신앙 안에서 이것을 하나로 연결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 역시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희망은 어떤 역경과 고난에서도 그것을 넘어서게 하는 힘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죽음도 넘어서는 희망. 이것이 우리 신앙 안에 담긴 소중한 보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믿음으로부터 옵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성령을 통해 부어진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믿음과 사랑과 희망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신앙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이기도 합니다.

역대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알려줍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지만, 그들이 역사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악행을 저지른 이에게 하느님께서는 벌을 주시고, 계명을 지키며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들에겐 축복을 내리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러한 시각은 분명 신앙인들에게도 필요해 보입니다.

오늘 우리는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 순교자들을,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신앙에 대한 열정을 생각합니다. 단지 죽음 앞에서의 열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이미 삶 안에서 그 열정을 간직했었고 그 결실이 김대건 신부님입니다. 어느새 우리 교회는 상당히 커졌고 교회 안팎에서 가끔은 성찰의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외적인 성장에 맞는 내적인 열정에 대한 걱정의 소리입니다. 모든 일에 열정이 있어야 그것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신앙 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열정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 생활은 의무로 가득 찬 삶이 될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통해 우리에게도 신앙을 위한 열정이 주어지길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허규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