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87) 사랑, 참 어렵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5-05-26 수정일 2015-05-26 발행일 2015-05-31 제 2946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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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 신부 중에 어린이랑 함께 있는 것을 유난히 힘들어 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 신부는 보좌 시절, 어린이 미사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주임이 되었고, 보좌 신부가 있어서 어린이 미사를 안 하게 돼 그것 자체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좋아합니다.

며칠 전에 동창 신부들 몇 명이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벼운 수다를 떠는데, 어린이를 싫어하던 그 신부님이 자신이 경험한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어딜 가는데 낮 시간이라 버스 안이 한산하더라. 버스를 타자마자 자리가 있기에 얼른 앉았지. 그런데 다음 정거장에서 연세가 좀 있는 분이 아기를 안고 타신 거야. 얼른 자리를 양보해 드렸어. 그러자 그 분이 ‘고맙다’는 말을 몇 번씩 하시며 앉으시는 거야. 그리고 나는 서서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다음 정거장에서 뒷자리 앉은 사람이 내리기에 그냥 자리에 또 앉았지. 그런데 그 할머니 품에 있는 아이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더라. 그날따라 할머니 품에 안겨서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그 아이가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그 말을 듣고 우리 모두가 동시에,

“세상에, 진짜로? 네가 아이 얼굴이 예뻐 보였다고?”

“응, 그날은 좀 그랬지. 처음에는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려 윙크를 몇 번 했지. 그런데 아이는 전혀 반응이 없어. 그 다음으로 웃는 얼굴을 하며 혀를 낼름, 낼름 거렸지. 그래도 아이는 전혀 반응이 없어. 그래서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 치웠다했지. 아이를 좀 웃기려고.”

그러자 다른 동창 신부가,

“별 짓을 다했네, 다했어. 평소에 아이들을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 그 마음이 전해지지. 평소 네 눈에는 ‘나는 아이를 싫어한다’ 써 있는데, 처음 보는 그 아이가 너를 잘도 좋아했겠다!”

“그래? 나는 그걸 몰랐지.”

“왜, 사고 쳤어?”

“사고는 무슨. 그래서 아이가 하도 반응이 없기에, 처음에는 내 눈을 옆으로 쭉~ 찢어 보이며 혀를 낼름, 낼름했지. 그러자 아이가 조금 반응을 하기에, 그 상태에서 코를 들창코를 만든 다음, 아이 얼굴에 훅~ 하고 다가갔지! 그 순간, 조용한 버스 안에서 그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거야! 그 아이의 할머니도 깜짝 놀라서 아이를 흔들어 달래는데, 아이 울음이 그치지 않고. 할머니는 아이가 경기 일으킨 줄 알고, 한 손으로 아이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아이를 흔들고 품에 안고! 할머니는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아저씨가 마귀 얼굴로 당신 손녀딸을 놀래게 만든 지는 전혀 모르고, 손녀딸이 갑자기 놀란 줄 알았나봐! 그런데 그 날, 진짜 경기를 일으키고 놀란 사람은 나야 나.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등골이 오싹, 머리칼이 쭈뼛! 그냥 어쩔 줄을 모르다가 내가 사라지는 것이 좋겠다 싶어, 그만 다음 버스 정류소에서 내려버렸지, 뭐! 아이에게 좀 잘 보이려다가 사랑이 참 어렵더라, 어려워!”

사랑은 예술 같습니다. 사랑은 그 마음의 시작부터 진심이 있어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대상이 진심 무엇을 바라고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과정 같습니다. 내가 사랑이 준비됐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준비되기를 바라는 기다림, 그 시간이 사람이 사랑 때문에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