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바빠요’가 전하는 거룩한 탈출기 / 김근영 기자

김근영 기자
입력일 2015-05-26 수정일 2015-05-26 발행일 2015-05-31 제 2946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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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식사 자리에서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 한탄했다. 본당 단체의 장을 맡고 난 뒤부터 “너무 바쁘다”며 일상적 일을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식사도 제대로 마치지 않은 그 지인은 다른 회원과 만난 뒤 나를 다시 보기로 했다. 얼마 뒤 그는 계획에 없던 회의가 생겼다며 나와의 약속시간을 변경했다.

이날 그 지인은 하루 일정을 꽉 채워 소화했다. 그는 바빴다. 그러나 그가 바빴던 이유는 자신이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데 따른 결과였다. 일상적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행동이 ‘일상적 일을 하지 않기’였을 뿐이었다.

우리는 매일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선다. 이 선택 앞에서 너무나 자주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나의 지인들과 직장인들을 살펴보면, 자신들이 바라는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을 만큼 바쁘지는 않다. “바빠요”는 어느새 그냥 하는 말이자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일에 대한 합법적인 변명이 돼버렸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쌓아두고는 책임감에 짓눌리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사실 무책임한 태도다.

물론 정말로 바쁜 사람들이 있다. 생계유지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한다면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메일, 문자 메시지 등 온갖 알림에 솔깃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누군가 그들을 꼭 필요로 하는 것처럼, 그가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셈이다.

“바빠요”로부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모든 일을 ‘선택’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정말 중요한 일인지, 단순한 습관인지를 생각한 다음 용감하게 ‘결정’해야 한다. 아울러 “바빠요”라며 자랑하기를 멈춰야 한다.

신앙도 선택의 문제다. “바빠요”로부터 탈출해야 신앙을 선택할 수 있다.

김근영 기자 (gabin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