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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어머니와 딸, 그리고 신앙

이 골롬바(대구 월배성당)
입력일 2015-05-04 수정일 2015-05-04 발행일 2015-05-10 제 294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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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착했다. 아니, 약했다. 악다구니 쓰는 모습 같은 것은 본 적도 없고 아버지와 다툴 때에도 그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어린 딸에게 그런 엄마는 답답했다. 모든 것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화가 날 때도 많았다.

어느 날 밤 그 엄마가 밤새 울었다. 옆방에서도 흐느낌이 들릴 만큼 큰 울음이었다. 딸은 감히 문을 열어볼 생각조차 못했다. 그날 암 선고를 받았음을 안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딸은 중3이었고 부모는 자식 성적을 먼저 걱정했다. 그리고 딸에게 여행을 간다 했다. 생애 처음 장거리 여행이라 신이 난다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간 병원에서 엄마를 다시 만났다.

엄마라 부르지도 못했다. 항암치료로 다 빠진 머리카락에 온갖 기계들에 의지해 숨을 쉬는, 마른 장작처럼 침대에 누워있는 그 여자는 딸이 알던 그 어미가 아니었다. 몇 달만에 만났지만, 딸도 엄마도 서로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 후 엄마는 떠났다.

엄마가 없는 성장기를 보내며 딸은 부모를 많이도 원망했다. 어미의 병을 키운 아비의 무책임을 원망했고 마지막 몇 개월 그 소중한 시간을 떨어져 보낸 것이 억울해 어미를 원망했다. 그렇게 웅크린 미움을 품고 신까지 원망했다. 그분의 섭리 따위 이해하기 싫었다. 나름은 간절했을 그 기도들을 들어주지 않은 신을 따르기가 싫었다.

시간이 지나 딸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자식 끼니를 챙기느라 수없이 밥을 굶었고 기침을 하는 아이 덕에 며칠 밤을 지샜다. 그날들을 보내며 딸은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너무 일찍 떠난 엄마가 그리워 숨죽여 울었다.

어미가 된 딸은 깨달았다. 부모에게 자신 역시 이토록 소중한 존재였음을. 딸에게는 아픔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테고, 딸의 일상에 독이 되고 싶지는 않았을 터였다. 아픈 엄마는 그런 마음으로 딸에게서 떠나갔으리라.

응어리진 미움이 풀리는 것은 순간이었다. 마음을 바꿔 먹고 처음 찾은 곳이 성당이었다. 주님을 모른다고 여러 번 외친 삶을 살았지만, 자식을 그리 키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찾은 그 성당에서 울고 또 울었다. 이유를 묻는 아이를 그저 껴안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빌었다.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용서하지 않으셔도 좋으니 부디 이 아이에게만은 그 해가 가지 않게 해 달라고.

힘든 결정들 속에서 자신을 지켜봤을 엄마,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기도한다. ‘이 아이는 나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그저 이런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엄마의 마음임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골롬바(대구 월배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