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봉헌생활의 아름다움과 소중함 / 신정숙 수녀

신정숙 수녀(인보성체수도회 새감연구소 소장)
입력일 2015-03-24 수정일 2015-03-24 발행일 2015-03-29 제 2937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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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산을 오르다보면 만나는 분들로부터 받게 되는 공통된 질문이 있다. “주일인데 수녀님들께서 어떻게 산에 오셨어요?” 이 바쁜 주일에 성당에 있어야 할 수녀가 산에 있으니 의아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하시는 질문이다. 언제부턴가 교회 내에서 수녀는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해서 전화를 하기도, 찾아가 무엇인가를 청하기도 머뭇거려지게 되는 바쁜 ‘본당 수녀님’으로 비춰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산길을 걸으며 속으로 곱씹는다. ‘수녀인 나는 누구지?’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향해 있는 존재일까?’ 아마 이 질문 앞에서 망설임 없이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영적이고 인격적인 얼굴에 대한 자화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완성해가는 노고를 가장 큰 기쁨으로 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사명이 곧 자기 자신을 참되게 알고, 그 앎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에 있음을 알기에 기꺼이 죽는 것을 선택한다. 인간은 진리에 대한 앎과 그 진리의 선택에 의해 자신 안에서 자유롭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골고타 위에서 ‘다 이루기’까지, 진리 안에서 자유의 충만함에 이르는 수난의 고통을 통해 새로운 아담을 창조하심으로써 당신 안에서 인간의 이상을 실현하신다.

가정과 혼인의 교황이라 불리기를 원했던 성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현대인들이 겪는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은 자기의 근원과 최종목적을 묻는 능력을 잃어버린데 있다고 간파했다. 본 수도회의 설립자이신 윤을수 라우렌시오 신부님은 우리의 최후 목적은 단 하나, 하느님의 생명에 들어 그것을 영원히 누림에 있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이 이 목적을 향해 방향 지어져 있을 때 행복하다고 일러주셨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바로 우리에게 이렇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다. 그러기에 행복은 그분을 믿고 따르며,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내 안에 사시는 그분과 온전히 하나 되는 그 안에 있다. 이는 곧 언제나 양심의 바른 빛을 따라서 의지의 힘을 통하여 모든 동작을 지배하는 가운데 스스로 평화를 누리는 사람이 되고, 또 남과 살아가는 법을 배워 그리스도의 넘치는 행복과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분의 행복한 제자인 우리는 암흑에 덮인 세상을 비추는 하나의 광명, 그리스도의 등불이다. 그런 우리의 사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나 자신의 행복함, 언제나 바르고 선한 지향으로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인생관을 전해주는 것이다.

수도자는 청빈, 정결, 순명의 복음적 권고를 통해 오직 하느님께만 소유된 사람들, 하느님만을 섬기며 우리 가운데 와 있는 그분의 나라가 성취되는 참된 행복의 증거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그들 삶의 근본 규범은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두고, 그분의 복음을 살아가며 그분을 따르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예언의 목소리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서 따르는 사람들을 초대하신다. “세상을 일깨우십시오. 예언적이고 세상을 거스르는 여러분들의 증거를 통해 세상을 비추십시오!” 어떻게 세상을 일깨울 수 있을까?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의 복음을 실천하는 행복으로 가득 찬 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 주님께만 신뢰를 두기에 하느님 나라를 위한 봉사의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세상을 향해 나가는데 주저하지 않는 용기, 우리 삶에 있어 꼭 필요한 한 가지로 선택한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교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랑의 법을 모든 사람들,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실천하는 가운데 지칠 줄 모르는 형제애를 건설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보편적 형제애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인류 전체를 향한 예수님의 꿈 자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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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숙 수녀(인보성체수도회 새감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