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사순특집] ‘십자가의 길’이란…

이승훈·김진영 기자
입력일 2015-03-17 수정일 2015-03-17 발행일 2015-03-22 제 2936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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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수난 현장 순례하던 ‘거룩한 행렬’ 기도로 발전

중세 이후 ‘십자가의 길’ 용어 정착
12세기 경 예루살렘 성지순례 재개로
고난의 길·장소 담은 14처(處) 확산
교회법 따라 축성된 곳에선 전대사 가능 
수원교구 ‘손골성지’ 십자가의 길. 가톨릭신문 자료 사진
■ 유래

사순시기, 교회는 신자들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며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길 권고한다. 십자가의 길 기도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신자들은 초세기부터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리고, 묻힌 장소를 거룩하게 여겨, 순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을 기억해왔다. 이 순례를 오늘날 십자가의 길 기도와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수난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따라 행렬하고 찬미가를 부르던 순례 모습은 십자가의 길 기도의 모태가 됐다.

‘십자가의 길’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중세 이후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보나벤투라 등의 성인들이 ‘십자가의 길’에 큰 관심을 두고 참여했다. 십자가의 길을 단순한 순례가 아닌, 신자의 심신을 수련하는 기도로 여긴 것이다.

12세기 경 예루살렘 성지순례가 다시 시작되면서 순례자들은 자신들의 도시에 예루살렘의 ‘거룩한 장소’를 닮은 모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형은 그리스도가 고난 받은 길과 머무른 장소를 나타내는 ‘처(處)’를 경배하는 모습으로 발전했다.

특히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나 경당을 중심으로 이런 처들이 설치되면서 십자가의 길이 널리 퍼졌다.

십자가의 길이 14처로 고정된 것은 1731년 교황 클레멘스 12세의 승인을 얻으면서다. 이때 고정된 14처는 ▲사형선고를 받음 ▲십자가를 짐 ▲첫 번째 넘어짐 ▲마리아를 만남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짐 ▲베로니카가 예수의 얼굴을 닦음 ▲두 번째 넘어짐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함 ▲세 번째 넘어짐 ▲병사들이 예수의 옷을 벗기고 초와 쓸개를 마시게 함 ▲십자가에 못박힘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둠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 ▲무덤에 묻힘 순으로 이뤄진다.

14처로 고정된 십자가의 길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전통적인 신심행위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의미로 예수의 부활을 첨가해 15처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교회는 예루살렘을 순례할 수 없는 사람들이 14처가 설치된 곳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쳐 전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왔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십자가의 길로 전대사를 얻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채워야 한다. 먼저 기도 장소가 교회가 정한 법에 따라 설치·축성된 14처여야 한다. 14처 전체를 중단하지 않고 바쳐야 하고, 각 처를 이동하며 바쳐야 한다. 단, 공동체가 함께 기도를 바칠 경우 움직임이 불편하면 주송자만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울러 전대사의 일반적 조건인 고해성사와 영성체, 교황의 지향을 위한 기도를 한다면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

■ 다양한 십자가의 길 기도문

세월호·사형수 등 주제로 묵상 이끌어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 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사순시기에 줄곧 바쳐지는 십자가의 길. 각 본당과 단체들은 십자가의 길을 조금이라도 더 깊이 묵상하며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들을 곁들인다.

주님 수난과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다룬 영화를 보거나 103위 성인들의 삶을 묵상하는 등 여러 방법이 있지만 최근에 나온 몇 가지 독특한 십자가의 길 기도문을 소개해본다.

■ 세월호 십자가의 길

광주대교구에서 4월 16일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펴낸 세월호 십자가의 길 기도문. 노틀담 수녀회가 기도문을 만들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故)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의 묵상글이 담겨 있다.

세월호 출발부터 침몰 순간, 희생자들의 죽음과 시신 수습까지의 상황을 다룬 묵상글은 기도하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기도문은 광주대교구 홈페이지 알림마당 자료실 세월호 관련 게시판에서 PDF 파일로 받거나 SNS를 통해 접할 수 있다.

매일 오후 4시 진도 팽목항 미사와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 분향소 앞 천주교 부스 오후 8시 미사 시작 30분 전에는 이 세월호 십자가의 길 기도문이 봉헌되고 있다.

■ 사형수와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

「사형수와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사형수 5인 지음/164쪽/6000원/가톨릭출판사)은 예수를 알고 참회와 속죄의 길을 걷는 5명의 사형수가 십자가의 길을 봉헌하며 묵상한 기도를 담고 있다.

“상처받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며 회개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더 혹독한 고통 속에서 희생하고 기도하며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살아가겠습니다.”(도 토마스의 기도 중, 제1처 예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매일 넘어지는 저에게 하느님의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다가와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실수할 수 있는 거’라면서 저를 일으켜 세워 놓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이 아우구스티노의 기도 중,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각 처에는 현대 종교미술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지거 쾨더 신부의 십자가의 길 그림이 더해졌다.

■ 살아가는 십자가의 길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쁘고 힘든 현대인에게 성당을 찾아가 십자가의 길을 하는 것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이 아닌 그분의 십자가의 고통이 먼저 떠올라 생각조차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더욱이 예수님이 나 때문에 그런 고통을 겪으신 것을 잊어버리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만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의 소중함을 잊고 산다.

「빛을 기다리는 밤」(이승만 지음/192쪽/1만원/성바오로)은 본당에 가서 십자가의 길을 하기 부담스러운 신자들을 위한 책이다. 책에는 십자가의 길 각 처에 대한 설명에 이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이 이야기된다. 인간이 겪는 고통의 십자가들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바라보고, 절망이 아닌 희망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도록 이끄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이 밖에도 「성서 말씀으로 된 묵주 기도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매일 바쳐라」(필립마리 버얼리 지음/박찬문 번역/96쪽/2000원/성요셉)와 「성모님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황난영 지음/김옥순 그림/40쪽/3000원/바오로딸) 등도 참고할 만 하다.

이승훈·김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