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순기획] 쪽방촌 사람들 - 영등포 쪽방촌 현장 체험 (하)

김신혜 기자
입력일 2015-03-03 수정일 2015-03-03 발행일 2015-03-08 제 2934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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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쪽방에도 하느님 손길… 힘들지만 함께 나누고 살아요”
사업실패로 거리에 나앉게 된 건 ‘한순간’
고통 견디려 술에 의지하다 건강마저 잃어
외부인 방문에 불편한 기색 역력했지만
한 인격체로 다가가니 금새 속마음 드러내
타인과의 대화 낯설어진 외로운 이들일 뿐
그저 가난할 뿐 그들도 나와 같은 보통 사람
겉모습 판단하는 대신 그들의 삶 응원하기로
■ 긴장 속 쪽방촌 탐방

집을 나서 쪽방촌 주변을 둘러본다. 위험한 동네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혼자 다니려니 긴장이 절로 된다. 따닥따닥 붙은 집들 사이에 문이 열려 있는 곳으로 들어가봤다.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공간에 있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술병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한 층 더 올라가니 옥상에서 김상경(가명)씨가 빨래를 널고 있다. 물이 얼어서 보름 만에 세탁기를 돌렸단다. 그런데 세탁물은 달랑 티셔츠, 바지, 외투 한 개씩뿐이다. 매일 쓰는 수건이 보이지 않는다. “왜 수건이 없느냐”는 질문에 “수건은 그냥 사용한다”고 대답한다. ‘하루에 내가 만들어 내는(?) 세탁물이 몇 개더라. 한 개, 두 개, 세 개… 최소 5개다.’ 오랜만에 세탁기를 돌린 탓에 빨랫줄에는 옷가지들이 뒤엉켜있다.

김씨가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다른 쪽방 환경과 비슷하지만 비닐로 창문을 막아놓았다. 겨울 칼바람이 곧바로 들어왔다. 집 안인지 밖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환경에 허망한 생각이 밀려왔다.

쪽방촌 골목길을 벗어나 영등포역 지하철이 다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용화장실과 공용샤워실, 노랑·빨강·파랑 컨테이너가 보인다.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주민들이 임시거주시설로 이용하던 곳이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바둑을 두고 있다. 서로에게는 무신경해 보이지만 외부인의 방문에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결국 한마디 들었다.

“기자 양반,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이곳을 찾는데 여기는 구경하러 오는 곳이 아니야. 언론에서 찾아오지만 막상 우리에게 도움되는 건 하나도 없단 말입니다.”

그의 말이 맞다. 기자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그들이 처한 환경을 보고 느끼고 알리는 것뿐이다.

주민 김상경(가명)씨는 겨울철 마땅한 일거리가 없어 방에서 멍하게 보내는 시간이 많다.
주민 조광희씨가 잠들기 전 묵주기도를 봉헌하고 있다. 기도 지향은 요셉의원, 토마의 집 봉사자들을 위해서다.

■ ‘작은 천국’ 요셉의원

점심시간이 지나자 쪽방촌 한켠에는 또 다른 줄이 하나 생겨났다. 무료 진료 시설 ‘요셉의원’ 앞이다. 지난 1987년 문을 연 요셉의원은 노숙자와 쪽방 거주민, 알코올 의존증 환자, 외국인 노동자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무료로 진료해왔다. 지금껏 이곳을 거쳐 간 환자만도 56만 명에 달한다. 이날 오후에만 100명이 훨씬 넘는 환자가 의원을 찾았다.

요셉의원은 환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치료와 재활을 돕기 위해 도서실 및 휴게실을 운영하고 성경공부, 단주모임, 음악치료, 영화포럼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이 밖에도 음식나눔, 옷나눔, 목욕봉사, 이발봉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대기실 의자에 환자들이 작은 군집을 이뤄 앉아있다. 한두 명의 여성 환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가벼운 감기에서부터, 치통, 당뇨, 고혈압 등 주로 내과와 치과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이 많다.

내과 진료를 받고 나온 환자가 기자를 부르더니 자신의 기구한 삶을 털어놓았다. 이동출(가명)씨는 IMF 사태 때 회사가 부도나면서 직장과 가족 모두 잃었다. 노숙생활을 하다 지금은 쪽방에 살고 있는 그는 겨울이면 감기를 달고 산다. 이야기를 하면서 연신 기침을 해댄다. 이씨는 제대로 된 겨울 외투 하나 없이 추운 날씨를 견디고 있었다.

당뇨, 혈압, 혈액순환제 등 다양한 약을 복용 중인 그는 한 달 약값만 12만 원을 쓴다. 약값은 폐지를 주워 마련하고 있다.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하루에 2~3천 원 밖에 못 벌어요.” 하루 벌이가 몇천 원에 불과하지만 자식들에게 수입이 있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이씨에게 월세와 약값은 버겁기만 하다. 몸도 안 좋은데 추운 쪽방에서 지내는 것이 걱정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활에 불평하지 않고 주어진 대로 살아간다는 이씨의 말이 머리에서 자꾸 맴돈다.

요셉의원 도서관을 찾은 한 주민이 책을 읽으면서 필기하고 있다.
요셉의원을 찾은 한 쪽방촌 주민이 진료 후 약국에서 약을 받고 있다.

■ 나눔+나눔

요셉의원에서 치료받고 이발 봉사를 하고 있는 김용봉(베드로)씨를 만났다. 잘 나가던 이발사였던 그는 7년 전 퇴근길에 의식을 잃고 길에 쓰러지면서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더 이상 가족에게 짐이 될 수 없어 전 재산과 대학생이던 두 자녀를 아내에게 남긴 채 무작정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영등포 쪽방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살아가고 있다.

김씨는 뇌졸중 치료를 위해 의원을 찾았다. 한방치료를 받으면서 영등포공원 운동기구를 이용,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이제 팔다리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지난해 5월 요셉의원에서 세례를 받은 이씨는 요셉의원에서 일하는 봉사자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남을 위해 봉사를 해 보자’ ‘나보다 못한 사람도 많지 않은가? 그들을 위해서 내 기술을 다시 써봐야겠다.’ 그리고 10월 초부터 요셉의원 이발 봉사자가 됐다.

1층에 위치한 사회복지사 방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노숙인, 쪽방 거주민들로 붐볐다. 한 쪽방 주민이 찾아와 라면을 달라고 부탁했다. 송은숙(아녜스) 사회복지사는 전날(2월 12일) 선물세트를 받았는지 확인했다. 받지 않았다는 말에 송씨의 손이 분주해진다. 선물세트에는 쌀, 라면, 김, 참치, 햄 등이 들어있었다.

거주민은 쌀은 필요없다며 두고 가겠다고 했다. 얼마 전에 20kg 쌀을 받았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쌀을 주라고 말한다.

‘욕심내지 않고 본인이 필요한 것만 챙겨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네. 힘든 사람이 남을 더 잘 도와준다는 말이 이런 거였어.’

물질적인 것에 욕심부렸던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노숙인, 쪽방 거주민을 위해 일하는 요셉의원 봉사자의 모습, 자신의 몸이 불편한데도 남을 위해 봉사하는 쪽방 주민들 모습 등 하느님 안에서 서로 돕는 모습이 아름답다.

■ 영적 목마름

요셉의원 4층에는 도서관과 성경모임방이 있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여느 도서관 부럽지 않다. 다양한 책들이 서가에 가득 차 있다.

한 할아버지가 책을 보면서 무언가 열심히 필기하고 있었다. 신자는 아니지만 천주교 교리가 궁금해 책을 읽고 있는 것이었다. ‘토마스의 집’에서 점심 끼니를 해결하고 매일 도서관을 찾는 할아버지는 이곳은 크게 관여하는 사람이 없고 편하게 책만 볼 수 있어 좋다고 환하게 웃는다. 기회가 되면 천주교를 믿고 싶다는 말도 한다.

도서관 옆방에서는 성경공부가 한창이다.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마르 16,9)

조광희(사도요한·서울 영등포본당)씨가 성경 구절을 읽고 있었다. 김희옥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지도 아래 요셉의원 환자 8명이 마르코복음을 공부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성경공부는 기자가 찾은 날이 마지막 시간이었다. 세례를 받은 신자들의 교리교육 강화 차원에서 시작된 성경공부는 성경 읽기와 나누기로 이뤄졌다. 공부 분위기가 사뭇 진지했다. 신자들은 성경공부 마지막 시간을 아쉬워하며 그동안 공부 소감을 나눴다.

마르코씨는 “우리끼리 성탄절 선물 나눔을 통해 다시 한 번 가족의 사랑을 체험했다”며 “하느님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타인에게 무관심했던 이들은 성경공부를 통해 다른 사람 이야기에 경청하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매일 기도를 실천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조광희씨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묵주기도 5단을 봉헌한다고 말했다.

성경을 배우고 삶 속에서 성경 말씀을 실천하는 이들 모습에서 하느님이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배운다.

■ 우리와 같은 사람

쪽방촌 거주민도 가까이서 보면 보통 사람이다. 노숙인이 되거나 쪽방에서 사는 것이 그들의 잘못이라고만 볼 수 없었다. 사업실패로 신용불량자가 되고, 실업자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는 말을 들을 때, 나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 누구도 이런 삶을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죽지 않고 어떻게든 견뎌보겠다는 의지가 술로 이어졌다. 혼자 고통을 감당할 수 없기에, 견디기 위해 마신 술 한두 잔이 한 병이 되고 두 병이 됐다. 그 술로 인해 집을 잃고 병을 얻었으며 극복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처음 외부인에게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던 쪽방 거주민들은 하나의 인격체로 가까이 다가가면 금방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타인과의 대화가 낯설어진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노숙인, 쪽방 거주민의 겉모습으로 그들을 판단해선 안 된다.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보다 조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라는 점을 되새긴다. 좀 더 소외된 이웃, 가난한 이웃의 삶을 돌아보고 그들의 삶을 응원하며 남은 사순시기를 보내고자 한다.

김신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