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육사 교수의 병영일기] 유난히 추웠던 19년 전의 기억

이강호 소령(노바토·육군사관학교 교수)
입력일 2015-02-24 수정일 2015-02-24 발행일 2015-03-01 제 2933호 2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멋진 생도 제복 입고 싶은 순진한 호기심에 육사 지원
고된 훈련으로 그만둘 생각도… 기도로 마음 추스려
“대한민국 군인, 늠름해 질 수 있도록 기도·성원해주길”
저는 새벽 공기를 가르는 우렁찬 군가로 매일 아침을 시작합니다. 이 군가의 주인공은 바로 지난 1월 18일에 육군사관학교에 가입교해 화랑기초훈련을 받고 있는 75기 예비 생도들입니다. 군인정신과 군인 기본자세 그리고 기초체력을 배양하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후배 생도들을 보며 19년 전 저의 모습을 회상해 봅니다.

저는 1996년 1월에 육사에 가입교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그날, 저는 어머니 손을 잡고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육사 정문으로 들어왔습니다. 마침내 헤어질 시간. 저는 그때 눈물을 훔치고 뒤돌아서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멋진 생도 제복을 입어보고 싶다는 순진한 호기심으로 육사에 지원했습니다. 당시 저는 육사가 군사교육기관인 줄 정말 몰랐고, 군사훈련을 ‘조금(?)’ 받는 특수한 대학인 줄 알았던 거죠. 기쁜 마음으로 입학통지서를 받고 육사에 가입교할 때, 생도생활은 마냥 멋있고 재미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 허황된 바람은 단 몇 시간만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오후 2시,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시작된 기초군사훈련. 그 순간 저는 말 그대로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어색한 짧은 머리와 어울리지 않는 전투복, 어정쩡한 제식 동작까지….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더욱이 우리를 교육시키는 훈련지도 생도들은 정말 무서웠습니다. 제식훈련, 총검술, 각개전투, 사격 등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 취침 나팔소리와 함께 침대에 누워 모포를 덮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는 경춘선 기차 소리를 들으며, 남몰래 뜨거운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육체적 고통에 중도에 포기할까하는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지켜봐주시는 하느님과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꾹 참고, 용기를 냈습니다. 힘든 훈련 기간 동안 제가 유일하게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시간은 매주 주일 오전 종교행사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신부님 강론 시간에 종종 피곤에 겨워 졸긴 했지만, 미사 시간만큼은 제게 꿀같이 달콤한 시간이었습니다. 성당 맨 앞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동기생이 볼 새라 몰래 훔쳤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 때 제게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두 손을 내밀어 격려해주셨던 성당 자매님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국가의 간성이 되고자 육사를 비롯한 각 군 사관학교에 가입교한 예비 생도들, 전문 직업군인이 되고자 군문에 들어선 장교 및 부사관 후보생들, 그리고 국가의 신성한 부름을 받아 훈련소에 입소한 병사들. 이들 모두에게 형제, 자매님들의 많은 기도와 따뜻한 성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들이 여러분의 사랑을 듬뿍 받아 무사히 훈련을 수료해 조국을 지키는 늠름한 군인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강호 소령(노바토·육군사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