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순기획] 쪽방촌 사람들 - 영등포 쪽방촌 현장 체험 (상)

김신혜 기자
입력일 2015-02-24 수정일 2015-02-24 발행일 2015-03-01 제 293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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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평 쪽방… 따뜻한 물 꿈도 못 꾸고 벽에선 냉기가
좁은 골목에 밀집된 쪽방들 지저분한 공용화장실에 온수 안 나오는 샤워실 TV·냉장고 등이 살림 전부
2012년 주거환경 개선됐지만 여전히 살아가기 열악한 환경
‘토마스의 집’에서 점심 해결 ‘자존심 유지비’ 200원 ‘눈길’
노숙인과 대화하며 편견 해소
한때는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아버지였다는 사실 깨달아 
살기 위한 노력도 엿보여
행려인 및 쪽방 거주민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영등포 쪽방촌 초입에 위치한 노숙인 급식소 토마스의 집은 매일(목요일 제외) 오전 11시40분부터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 오혜민 기자
사순시기,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참회와 보속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순 담화를 통해 고통과 어려움에 놓여 있는 이들에게 귀 기울이고 그들과 함께하길 호소했다.

사순시기를 맞아 가톨릭신문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가난의 현장을 직접 찾았다. 첫 번째로 발걸음을 한 곳은 서울 영등포 쪽방촌이다. 본지는 직접 가난한 이들이 겪는 애환과 그런 가운데서 느끼는 사랑의 모습 등을 생생히 전한다.

서울특별시의 ‘2010~2014년 서울시 노숙인-쪽방주민 현황’에 따르면 쪽방촌 거주민은 2010년 3335명에서 2014년 3672명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영등포동·돈의동·창신동·남대문·동자동, 이른바 서울시 5대 쪽방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다.

영등포동 쪽방촌을 찾기 위해 영등포역 6번 출구에서 나와 영등포 역전 파출소 방향으로 5분 정도 걸었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 휴대폰 지도 앱에 의존해야 했다.

‘쪽방촌’이라는 적힌 표지판이 있을 리가 없다. 조바심이 들었지만 그나마 영등포 쪽방촌 곁에 노숙인 급식소 토마스의 집과 무료진료소 요셉의원이 있어 그곳의 도움을 받았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나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쪽방촌 골목길에 들어서자 집들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기차처럼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집은 방문이 굳게 닫혀 있고 문에는 자물쇠만 덩그러니 달려있다. 한쪽 모퉁이에서는 몇몇 사람이 말없이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운다.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 쓸쓸한 모습이다.

여러 개의 작은 크기로 나눠 놓은 방들이 밀집된 쪽방촌. 방 하나가 1~1.5평, 성인이 겨우 발을 뻗고 누울 수 있는 크기다. 하루에 7000~1만 원, 월세는 20~30만 원이다.

■ 여전히 열악한 주거환경

집 입구에는 공용화장실과 샤워실, 세탁기가 놓여있어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손님이 온 것을 반기듯이 화장실과 샤워실 문이 활짝 열려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쾨쾨한 냄새가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바닥은 언제 청소했는지 알 수 없고, 변기 옆에 있는 투명한 봉지에는 휴지들이 잔뜩 쌓여있다.

샤워실도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 온수기, 거울, 수도꼭지는 물때로 누렇다 못해 빨간색까지 띤다. 몸가짐을 깨끗이 하기 위해 씻는 곳인데, 지저분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수돗물이라 물조차 더러울 것 같다. 게다가 따뜻한 물도 안 나온다. 집주인이 돈을 아끼려고 온수를 안 나오게 설정해 뒀기 때문이다.

‘이런 야박한 주인 같으니라고.’ 거주민들이 월세를 내는데도 최소한의 생활여건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목욕은 당연히 꿈도 못 꾼다.

쪽방을 따뜻하게 해주는 물건은 달랑 전기장판뿐이었다. 전기장판 위에서만이라도 따뜻해서 다행(?)이었다. 장판마저 없었다면 방은 진짜 냉골이었을 거다. 벽에서 흘러드는 냉기 때문에 방 안에서도 입김이 절로 나온다.

쪽방 체험을 위해 권석오(요아킴·81·서울 영등포동본당) 할아버지 집을 찾았다. 가구라고야 조그만 TV에 냉장고, 밥솥, 서랍장이 전부다. 서랍장 위에는 사회복지사로부터 받은 생필품들을 쌓아놓고, 또 다른 서랍장 위에는 십자가, 성가정상, 가톨릭신문이 보인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가톨릭신문을 보니 왠지 반가웠다. 할아버지한테 신문을 구독하냐고 묻자, 토마스의 집에서 가져오는 것이라고 했다. 할아버지와 기자, 두 사람만으로 방이 꽉 찼다.

“한국전쟁 때 피난 가다 팔을 다쳐 의수를 하게 됐습니다. 슬하에 1남 3녀 자식이 있지만 쉽게 만나지 못합니다. 남겨줄 재산이 없기 때문에, 손 벌리는 것도 싫습니다.”

쪽방촌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다른 쪽방 거주민을 만났다. 쪽방생활 10년 차인 한정교(59)씨다. 한씨의 살림도 단출했다. 길에서 주워온 TV와 냉장고가 살림의 전부다. 한씨는 축구를 하다가 넘어져 골반을 다쳤다.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데도 조건부 수급자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몸이 불편해 돈을 버는 것이 막막한 한씨는 죽고 싶지만 깊은 신앙심 때문에 자살도 못 한다고 했다.

“자살하면 지옥 간대요. 자살하는 방법은 참 간단합니다. 술을 왕창 마시고 수면제 먹고 가스 켜놓으면 끝입니다. 금방 죽을 수 있지만 지금 사는 곳도 지옥인데, 죽어서까지 지옥에 가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습니다.”

400여 개의 영등포 쪽방촌은 2012년 서울시와 영등포구청의 리모델링 사업으로 주거환경이 많이 개선된 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이 살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 같은 처지 사람들을 위해

쪽방촌 초입에 있는 노숙인 급식소 ‘토마스의 집’을 찾아갔다. 급식소는 노숙인, 쪽방 거주민 등 400여 명의 사람들이 매일(목요일 제외) 찾아와 점심을 해결하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큰 테이블에서 봉사자들이 불고기 볶음을 분주하게 만들고 있다. 주방에서는 큰솥에 미역국을 끓이고 있다. 이런 점심 준비는 오전 8시30분이면 시작된다. 현재 하루 봉사자는 15~20명. 그중에는 쪽방 거주민 2명도 포함돼 있다. 자신의 처지도 열악한데 남을 돕기 위해 매일같이 토마스의 집을 찾는 이들은 쌀 씻기, 반찬 담기 등 모든 일에 열심이다.

토마스의 집 점심식사 준비에 함께했다. 손발이 척척 맞는 봉사자 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봉사자들을 돕겠다고 찾은 것이 괜히 폐를 끼치는 것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컵에 물을 따르는 정도다. 컵에 물 따르기, 식판 준비 등 배식시간이 되면 한꺼번에 손님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모든 것을 준비해 둬야 한다.

음식 준비가 끝나자 봉사들과 함께 모여 기도를 봉헌했다. “오늘도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대접할 수 있게 도와준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봉사자들은 본격적으로 배식을 하기 전 든든히 배를 채우고 장사(?)를 준비하는 모습들이다.

■ ‘자존심 유지비’ 200원

점심시간이 되자 토마스의 집 앞으로 노숙인, 쪽방 거주민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배식은 11시40분부터인데 벌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11시15분쯤 기자도 조심스레 그 줄에 서본다.

멀쩡한 차림의 젊은 여자가 줄에 서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이 여자는 왜 여기에 서 있지’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낸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배식을 기다린다. 결국 같이 줄 서 있던 아저씨가 “몇 살이냐”고 말을 건넨다. “내 자식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그 다음 질문은 “왜 여기 서 있냐”는 것이다. 당연히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궁금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내 이야기보단 아저씨 이야기를 듣게 됐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내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떠돌이 생활을 하다 도시보다는 시골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골로 내려간 적도 있다고 말해준다.

“귀농, 경제적 여유 있는 사람들한테나 쉬운 일이에요. 돈이 없으니 정착하기 어려웠어요. 이장, 동네 사람들이 색안경 끼고 나를 평가하더군요.”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노숙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비록 지금은 거리를 배회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한 가족의 가장이었고,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이 큰 깨달음이 돼 돌아온다. 살아가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모습도 엿보였다.

한창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줄은 더욱 길어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디 있다가 오는 것인지 신기하다. 아직도 끼니를 거르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니….

드디어 기다리던 내 차례가 다가왔다. 그제야 새로운 사실을 한 가지 더 알게 됐다. 토마스의 집에서 밥을 먹으려면 ‘자존심 유지비’ 200원이 필요하다는 것. 200원으로 한 끼 식사 해결은 정말 저렴하다. 순전히 기자 입장에서 말이다. 근데 지갑에 200원이 없다. 요즘 편의점, 문구점 등 웬만한 곳에서 카드 결제가 돼서 현금을 잘 들고 다니지 않은 탓이다. 평소 얼마나 편리하게 생활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다행히 가방을 뒤적거려 찾은 오백원 동전으로 겨우 점심을 해결한다. 아침을 굶은 탓에 밥이 꿀맛이다. 점심 메뉴는 밥, 미역국, 불고기 볶음, 멸치 볶음, 김치다. 우리집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반찬이다. 하지만 쪽방촌 사람들에게 더없이 귀한 음식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쉽게 고기를 먹는다. 하지만 이들의 생활비로 고기를 사 먹는 것은 쉽지 않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봉사자가 우유를 쥐여줬다. 끼니를 잘 챙겨먹지 못하는 행려인들에게 요깃거리를 나눠주는 것이었다.

기자는 배를 든든히 채우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잠깐 방에 앉아있다 쪽방촌 특유의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집을 나섰다.

권석오 할아버지와 기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오혜민 기자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쪽방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물때로 누렇게 된 샤워실. 한겨울에도 온수가 나오지 않아 목욕할 엄두조차 낼 수 없다.
토마스의 집 봉사자들이 배식하고 있다.

김신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