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탄 르포] 산타마을 나주 ‘이슬촌’을 가다

김신혜 기자,김진영 기자
입력일 2014-12-16 수정일 2014-12-16 발행일 2014-12-25 제 2924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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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별이 빛납니다, 성탄맞이로 분주한 교우촌에
예수님 탄생의 기쁨을 온 마을 전체가 맞이하는 곳이 있다. 전남 나주 노안면 가톨릭마을인 ‘이슬촌’이다. 1900년부터 신앙 명맥을 이어온 교우촌, 이슬촌에는 나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회 ‘노안본당’(주임 이영선 신부)이 있고, 마을 주민 98%가 천주교 신자다. 이러한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2007년부터 이슬촌 주민들은 매년 12월이 되면 노안성당을 중심으로 ‘크리스마스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금년에도 이슬촌은 다양한 축제 준비로 바빴다. 가톨릭신문이 그 축제 준비 현장을 찾았다.

마을 주민 모두 다함께

“오늘은 바람이 참 많이 부는구먼. 그래도 비나 눈이 안 내리는게 어디여, 그것만으로도 하느님께 감사해야제.”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어르신들이 볏짚을 엮고 있다. ‘올해 크리스마스 축제 준비가 날씨 때문에 예년보다 늦어졌다’는 대화 속에 볏짚을 하나하나 엮는 손놀림이 분주하다. 빨리 만들어 ‘이슬촌 짚풀 미끄럼틀’을 꾸며야 하기 때문이다. 정성껏 만든 볏짚은 미끄럼틀의 경사 부분과 끝 부분에 사용된다.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내려오다 다치지 않도록 푹신푹신한 안전장치를 준비하는 것이다.

“농촌에서 볏짚은 가축 외양간 깃이나, 생짚을 그대로 논에 집어넣어 논토양 유기물로 사용하제. 우리가 지금 볏짚을 엮고 있는 것은 아이들 안전을 위해서구먼.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는데 다치면 안 되니께 더욱 꼼꼼하게 만들게 되는구먼.”

지난해 처음 선보인 짚풀 미끄럼틀은 꼬마 손님들에게 인기만점이었다. 그래서 올해에는 미끄럼틀을 좀 더 크게 제작했다고 한다.

이정연(안셀모)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신나게 미끄럼틀 타는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신이 난다”며 “매년 크리스마스 축제를 준비하는 것 자체가 예수님이 주신 성탄 선물 같다”고 전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슬촌 청장년회가 마을 들머리에서 노안성당까지 1km의 길을 꾸미고 있다. 트랙터를 이용, 은하수 터널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은 트랙터 운전을, 한 사람은 트랙터에 올라타 높은 나무와 터널에 오색 꼬마전구를 달고 있다.

“전구 다는게 쉬워 보여도 모두 수작업으로 하는 거라 시간이 많이 걸려. 은하수 터널을 중심으로 성당, 마을 입구 나무들에 일일이 전구를 달아야 하는구먼. 온 마을이 불빛으로 꾸며져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지.”

꼬마전구로 꾸며진 이슬촌은 성탄절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동화 속 나라로 변신 중이다.

12월 6일부터 축제 준비를 시작하고 있지만 할 일은 아직 산더미로 남아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카페 꾸미기와 함께 먹거리 장터를 위한 몽골텐트를 준비해야 하고, 캠프파이어에 사용할 장작도 마련해야 한다. 초등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마을 주민 모두가 함께 한마음으로 똘똘 뭉치는 모습이 인상 깊다. 준비 모습을 보면 ‘이것이 오래된 신앙 공동체의 면모’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느 누구도 맡은 일을 미루지 않고 성실히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는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남자노인회는 볏짚 만들기, 여자노인회와 부녀회는 먹거리 준비, 청장년회는 각종 트리 장식 설치, 아이들은 군고구마 판매 등을 맡고 있다. 이슬촌 축제는 휴농기의 적막한 농촌 풍경을 특색 있고 활기찬 분위기로 만들고 있다.

해피 크리스마스 축제

20일 개막한 이슬촌 크리스마스 축제는 25일까지 열린다.

주민 80%가 60~80대 노인인, 전형적인 농촌마을에서 크리스마스 축제가 열리는 것은 주민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였던 면이 크게 작용했다. 노안성당에서 성탄절 때마다 트리를 만들고 성당 주변을 꾸몄던 것이 축제로 발전했다. 고유 축제를 만들면서 이슬촌의 친환경 농산물도 팔아보자는 취지였던 이 축제는 점점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나 마을 차원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150여 명이 사는 소박한 마을이지만 축제 때가 되면 7000여 명 관람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주민들은 축제를 통해 신앙심도 더욱 깊어졌다. 축제를 찾는 이가 많을수록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커진다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크리스마스 축제가 마을 신앙의 뿌리와 잘 어울린다”며 “신자로서 크리스마스 축제를 직접 준비하고 아기 예수님 탄생을 알리는 것이 참으로 뿌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축제는 풍물놀이 공연을 필두로 마을 주민 국악인 한지연씨의 국악공연, 지역의 재능기부를 통한 공연으로 펼쳐진다. 또한 짚풀 미끄럼틀, 산타 트랙터 타기, 소망엽서 쓰기, 풍등날리기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여자노인회와 부녀회는 나주향토 음식 곰탕과 간단한 먹거리, 마을 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아울러 노안본당은 24일 축제에 오는 신자들을 배려해 오후 8시 성탄밤미사를 봉헌한다. 크리스마스 축제도 즐기고 미사도 참례하도록 한 것이다.

본당 주임 이영선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해 세상에 오신 것처럼 우리도 축제를 통해 사회에 행복을 주고자 한다”며 “지친 영혼들이 이슬촌에서 평화를 찾고, 불빛으로 반짝이는 나무를 따라 산책도 하고 유기농 음식도 맛보며 예수님 성탄 선물을 즐겼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슬촌 주민들이 크리스마스 축제 팻말을 설치하고 있다. 사진 이슬촌 제공
어르신들이 짚풀 미끄럼틀에 쓸 볏짚을 엮고 있다. 사진 이슬촌 제공
꼬마 손님들에게 인기있는 짚풀 미끄럼틀. 사진 이슬촌 제공
산타복장을 한 어르신들이 축제 방문객을 맞고 있다. 사진 이슬촌 제공

김신혜 기자,김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