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복음생각 (900) 새로운 시작 / 허규 신부

허규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입력일 2014-12-16 수정일 2014-12-16 발행일 2014-12-25 제 2924호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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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성탄 대축일(요한 1,1-18)
복음서에서 예수님 탄생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마태오와 루카입니다. 마태오 복음은 동방박사의 등장과 함께 이 세상에 왕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루카는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시절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복음서입니다. 마리아의 잉태 예고와 엘리사벳과의 만남, 그리고 호적 등록을 위해 베들레헴에 가야만 했던 이야기와 머무를 곳이 없어 동물들이 머물던 곳에서 아기를 낳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의 극처럼 전개되는 마태오와 루카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와는 달리 요한 복음은 아주 짧지만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말씀은 하느님이셨고, 하느님과 함께 있었으며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서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요한 복음의 내용은 히브리서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히브 1,2). 이제 그 말씀이, 하느님의 아드님이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십니다. 아니 오셨습니다. 이제 신앙인들은 그를 통해서 위로를 받고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처럼 주님을 직접 볼 수 있게 된 것이고, 폐허 속에서도, 곧 절망 속에서도 기뻐하고 환성을 올릴 수 있는 사건입니다. 사람이 되어 오신 것. 예수님의 육화는 우리가 인간의 방식으로 하느님을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질 수 있도록,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는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면서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이 세상에서 함께 사셨기 때문입니다.

성탄은 빛의 축제입니다. 사람들은 빛을 통해 이 모든 것들을 표현합니다. 대림 시기부터 초를 밝히고 별의 인도로, 어둠을 비추는 빛으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요한 복음이 말하는 것처럼 이 빛은 사람들에 의해 거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요한 복음은 이 기쁜 일을, 구약에서부터 예언되었던 구원의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호소합니다.

우리는 매년 성탄을 준비하고 기억합니다. 이것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다시금 되새겨 보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예수님의 탄생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은 특별히 연말의 분위기와 함께 한 해를 정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부활 대축일보다 더 많은 이들이 성당을 찾고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성탄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동안 신앙 안에서 부족하거나 소홀했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가능케 하는 것은 우리의 결단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말로서만이 아니라 삶 안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단지 축하 인사를 나누는 즐거운 축제를 넘어 진심으로 나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시고, 구원을 선사하시는 하느님 앞에서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우리의 이웃들에게 전하고 또 그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평화를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이태리 로마 성서대학(Pontificio Istituto Biblico) 성서학 석사학위를,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허규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