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교황 방한 이후 한국교회 과제에 대한 조사’ 결과 해설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4-11-04 수정일 2014-11-04 발행일 2014-11-09 제 2918호 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우선 과제다
한국교회 변화 중심주제 - 가난한 이들 돕기 위한 교회 / 사목적 분위기 조성 / 복음의 기쁨 사는 교회 / 세상 정의·평화 구현
교회 신원별 개선점 제시 - 성직자, 독선·권위주의 / 수도자, 영성생활 결핍 / 평신도, 사회정의 실천 부족 
교황 방한 ‘인상적 장면’ - 격의 없이 다가서는 면모 / 세월호 유가족 위로 / ‘가난’ 강조한 모습들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실시한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한국 천주교회 과제에 대한 조사’ 에서는 한국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실현하기 위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의 사목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사진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지난 1월 19일 서울 은평의 마을을 방문, 중증 환자들을 만나 격려하고 있는 모습.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소장 강우일 주교)는 주교회의 2014년 추계 정기총회를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한국 천주교회 과제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교회 신자들은 한국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복음의 기쁨을 사는 교회’, 그리고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는 교회’로 변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본지 11월 2일자 1면 참조).

이 조사는 주교단에게 교황 방한 이후 교회의 과제에 대한 논의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실시됐고, 결과는 주교회의 정기총회 첫날인 10월 27일 오후 주교 연수에서 발표됐다.

조사 문항과 방법

조사 문항은 ▲교황 방한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교황 연설과 강론에서 감동적이었던 것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떠오르는 단어 ▲교황 방한 이후 한국교회가 변화하기 위한 중심 주제 ▲한국교회 구성원들에게 개선돼야 할 점 ▲교회의 쇄신과 복음적 성장을 위한 과제 등으로 구성됐고, 중복 선택을 허용했다.

응답자는 총 680명으로, 연구소가 전자우편으로 응답을 요청해 답변한 교회 관계자가 218명(주교 6, 신부 87, 수도자 64, 평신도 61), 주교회의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참여한 신자가 462명(성직자 33, 수도자 23, 평신도 406)이었다. 전자우편 그룹은 성직자와 수도자, 홈페이지 그룹은 평신도의 비중이 높았으며, 조사는 10월 1일부터 15일까지 실시했다.

조사 결과

교황 방한 이후 한국교회가 변화하기 위한 중심 주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전자우편 그룹 30.3%, 홈페이지 그룹 35.9%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이어 전자우편 그룹에서는 ‘복음의 기쁨을 사는 교회’가, 홈페이지 그룹에서는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는 교회’가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교회 구성원들에게 개선돼야 할 점을 신원별로 조사한 문항도 눈길을 끈다.

한국 주교들에게 바라는 개선점으로는 ‘대화와 소통’, ‘사회정의 실천 노력 부족’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사목 비전과 리더십 부족’, ‘독선과 권위주의’ 등도 함께 지적됐다. 신부들이 개선할 점으로는 두 그룹 모두 ‘독선과 권위주의’(전자우편 46.2%, 홈페이지 48.1%)가 지적됐다. 이어 ‘기도와 영성생활 결핍’, ‘부유하고 안락한 생활’, ‘사치스런 취미활동’, ‘가진 이들 위주의 사목’ 등도 높게 나타났다.

수도자들에 대해서는 ‘기도와 영성생활 결핍’(40.4%), ‘편협하고 일방적인 사고’(31.1%)가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평신도들에 대해 전자우편 그룹은 ‘기도와 영성생활 결핍’, ‘사회정의 실천 노력 부족’, ‘분파적 행동’(각 35.0%)을, 홈페이지 그룹은 ‘분파적 행동’(42.3%), ‘이웃과의 반목’(39.9%)을 지적했다.

교회의 쇄신과 복음적 성장을 위한 과제 중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의 사목적 분위기 조성’이 전자우편(55.0%)과 홈페이지(63.4%) 그룹 모두에게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이어 ‘사회 정의와 평화 실현을 위한 교회의 참여 확대’, ‘사목자들을 위한 리더십과 인성교육 강화’, ‘신자 영성생활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등이 지적됐다.

한국교회의 실천 과제

연구소는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해 한국교회가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요청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교회의 사회적 참여에 관해서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적극적 관심 ▲복음적 시선으로 사회 갈등 치유 ▲교회의 복음적 식별 기반과 사회적 가르침 심화가 필요하다.

교회 구성원들과 관련해서는 ▲위에서부터의 변화 ▲작은 실천이라도 실행하는 결의 ▲사제 리더십 등에 대한 제도적 도움과 교육이 필요하다.

교황이 역설하고 한국 신자들도 공감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위해서는 ▲성직자들의 생활 태도 개선 ▲가난한 이들과의 지속적 만남과 연대 ▲가난한 이들이 교회의 주체 됨을 체험하는 공동체 구조가, ‘복음의 기쁨을 사는 교회’를 위해서는 ▲말씀에 맛들이는 교회 분위기 ▲신자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지속적 교육 ▲소공동체 활성화 노력이 필요하다.

교황 방한 기간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

교황 방한 기간 중 가장 인상적·감동적인 장면으로 전자우편 그룹은 ‘사람들에게 격의 없이 다가가는 모습’(44.0%)을, 홈페이지 그룹은 ‘세월호 유가족 위로’(51.9%)를 꼽았다. ‘사회적 갈등 지역 약자들과의 만남’, ‘노란 리본 부착’, ‘소형차 이용과 작은 서명’ 등의 항목도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연설과 강론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으로 전자우편 그룹은 ‘기억과 희망의 지킴이, 가난한 교회’를 역설한 한국 주교회의 방문 연설(42.2%)을, 홈페이지 그룹은 ‘고통 앞에 중립 없다’는 발언으로 알려진 로마행 기내 기자회견(51.9%)을 선택했다. 그 다음으로는 ‘부유하게 사는 수도자들의 삶이 교회에 상처를 입힌다’는 내용의 수도자들을 향한 연설이 두 그룹 모두에게 많이 선택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단어 중 양쪽 그룹 모두가 첫손에 꼽은 것은 ‘공감과 소통’(전자우편 44.0%, 홈페이지 41.8%)이었다. ‘가난’은 전자우편 그룹에서 2위, 홈페이지 그룹에서 3위를 차지했다.

■ 가톨릭신문 ‘응답하라 2014 한국교회’ 조사결과 비교

“변화·쇄신 절대 필요” 일관된 반응

결과 방향성에서 상당한 일치

교황 방한 쇄신 기대치 낮아

실제 변화 발생여부는 ‘미지수’

가톨릭신문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두 달 전인 지난 6월 한국교회의 여론주도층 314명, 서울대교구 가톨릭인터넷 굿뉴스 회원 420명 등 총 734명을 대상으로, ‘교황 방한에 즈음한 한국교회의 변화와 쇄신의 필요성과 과제’에 대해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실시한 조사가 방한 후에 실시된 반면 가톨릭신문사의 조사는 방한 전에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조사는 그 결과가 지시하는 방향이 상당한 일관성과 유사성을 갖고 있다.

‘응답하라 2014 한국교회’ 조사는 두 가지 질문 문항으로 구성됐다. 하나는 교회 쇄신의 필요성, 다른 하나는 쇄신이 필요한 영역들에 관한 질문이다. 다음은 여론주도층 314명의 설문조사 결과이다.

쇄신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쇄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재론의 필요가 없을 정도로 높은 공감을 표시했다. 즉, 세계교회가 변화와 쇄신을 필요로 한다는 서술에 대해서 전체의 97%가 공감을 표시했다. 한국교회의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1% 더 높은 98%가 동의했고, ‘전혀’ 또는 ‘약간’이라도 ‘동의 안한다’는 응답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쇄신이 필요한 영역들

한국교회의 여론주도층 314명은 절반 가까운 44.08%가 ‘성직자들의 권위주의와 성직중심주의’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그 다음이 3분의 1가량이 지적한 ‘교회 안의 세속주의’(33.88%)로 나타났고, 이어 ‘사목이 아니라 관리가 강조되는 교회 운영’(23.68%),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20.72%), ‘평신도들의 미성숙하고 개인주의적인 신앙’(19.74%)이 비슷한 수치로 나타났다. ‘교회의 사회교리에 대한 무관심’(14.14%)과 ‘성과 속을 분리하는 신앙과 삶의 유리’(13.49%) 역시 유의해야 할 쇄신의 영역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이 조사에서 이채를 띄는 것은, 교황 방한이 ‘실제로’ 한국교회의 변화와 쇄신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기대치가 낮았다는 점이다. 즉, 응답자의 불과 28%만이 실제로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데 ‘매우 동의’한다고 응답했고, 41%는 ‘약간 동의’했다. 따라서 전체의 69%만 동의했으며, 보통이 23%, ‘약간 동의 안함’이 5%, ‘전혀 동의 안함’이라는 응답 역시 2%로 없지 않았다.

이는 교황 방한이 한국교회 변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변화가 발생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주교단은 10월 30일 정기총회를 마치면서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가난한 교회’가 되지 못한 것을 깊이 성찰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과 방한 당시 발표한 메시지들을 바탕으로 변화와 쇄신의 여정을 시작할 것을 권고하고 다짐함으로써 변화에 대한 기대를 크게 높여주고 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