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나눔의 삶이 답일 수 있다 / 권길중

권길중(바오로·한국 평협 회장)
입력일 2014-10-28 수정일 2014-10-28 발행일 2014-11-02 제 291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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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아이는 사람이 될 가망이 전혀 없는 건가요?”

학교에 오신 학생의 어머니가 한숨을 쉬면서 하신 말씀이다. 그 어머니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상담을 맡아 많은 학생들을 선도하고, 진로를 결정하는 소문 난 상담교사 중 한 분이었기에 이 말이 쉽게 들리지 않았다. 아마 자기 아이의 문제에 교장이 직접 나선 것으로 봐서 이미 구제될 가능성이 없는 사안인 것으로 판단한 듯하였다.

문제의 학생은 중2 남학생이다. 하찮은 일로 친구에게 주먹을 날렸는데, 그로 인해 상대 학생의 얼굴을 상하게 만든 것이 발단이 되었다. 그 학급 수업에 들어가는 선생님들은 그 학생이 화를 내면 누구도 제재하거나 지도할 수 없는 성격이라며 다른 학교로 전학을 권고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런 학생들을 전학시키면서 서로 떠넘기게 되면 누가 선생님을 전문직으로 존중해주겠는가? 세상에 어느 누구도 그렇게 취급돼도 좋을 인격은 없다”는 이유를 대면서 우리 학교가 가정과 협력해서 학생을 선도해 보자고 담당 선생님들을 설득하였다.

우선 부유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환경에서 자란 그 학생이 왜 자기 통제력을 잃고 하찮은 일에 폭력을 쓰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었다. 상담교사인 어머니가 객관적으로 분석한 원인은 가정에서의 지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학생은 5대 독자였고 그를 끔찍하게 여기는 조부모님과 한 가정에서 살고 있었다. 부모는 조부모의 통제 속에서 아이의 양육과 교육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결국 아이는 어려서부터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고 성장했다. 어쩌다가 어머니가 아이를 훈육하려다가 아이가 화를 내게 되면, 조부모님으로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듣는 쪽은 어머니었다. 그야말로 이 세상에 ‘나밖에 없는 왕자’로 자란 것이다. 그런 행동이 학교에서도 그대로 통한 것이다.

나는 그 어머니에게 내 아들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상담전문가로서 판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어머니는 학교에서 적당한 징계를 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 사안을 핑계로 집에서도 아이를 지도할 수 있는 명분을 찾고자 한 것이다. 나는 두 번째로 이 학생이 잘하는 것은 무엇이며, 넘치도록 많이 가진 것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 학생의 어머니는 ‘잘하는 것은 춤이고, 차고 넘치는 것은 장난감’인 것 같다며 처음으로 가볍게 웃었다.

춤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좋아하시니 추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전문가처럼 잘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장난감은 사들이기만 하고 한 번도 버린 적이 없기 때문에 집에 장난감 두는 방이 따로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나는 이 학생이 가진 것을 이용하여 선도해 보자고 권고했다. 즉 집에 차고 넘치는 장난감은 갖고 싶어도 갖고 싶다고 말할 사람조차 없는 그런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면 좋겠다고 말해 주면서 가까운 고아원을 소개해 주었다.

어머니는 정말 그렇게만 해도 되겠는가를 물으며 너무 가벼운(?) 처벌에 몇 번이고 감사하며 돌아갔다. 아이는 그 다음 날부터 어린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골라 지도교사와 함께 고아원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이 학생은 자기가 버리는 장난감을 받아들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신도 ‘나눔의 기쁨’을 맛보게 됐다.

자신에게 하찮은 장난감이 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 정해진 일주일의 마지막 날에는 장난감 방이 빌 정도로 모든 장난감을 나누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권유로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를 통해서도 다른 이들과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일주일 뒤 그 학생은 알아 볼 수 없을만큼 놀랍게 달라졌다. 귀한 손주가 일주일 동안 학교에 갈 수 없는 벌을 받은 것에 크게 분노했던 조부모님도 그 고아원의 후원자가 되었다는 것을 뒤에 듣게 되었다.

작은 벌로 크게 변한 학생을 두고 놀라워하는 선생님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나눈 것은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자신 곁에 남아 자신을 이롭게 하는 묘약이 됩니다. 학생을 사랑합시다. 그래서 학생들로부터도 사랑과 존경을 받읍시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입니다.”

권길중(바오로·한국 평협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