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안녕 헤이즐’

박태식 신부(영화평론가, 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입력일 2014-10-21 수정일 2014-10-21 발행일 2014-10-26 제 2916호 1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남은 이에게 나는 어떤 의미인가

시한부 삶 사는 10대들의 로맨스
서로 추도사 읽어주는 장면 ‘인상적’
사랑하는 친구 잃는 고통 절절히 묘사
영화 ‘안녕 헤이즐’ 한 장면.
암! 헤이즐(쉐일린 우들리)은 불과 18살 나이에 말기 암 환자로 살고 있다. 부모는 딸 앞에서 가슴이 미어지지만 내색을 하면 안 되기에 과도하게 긍정을 가장한다. 헤이즐은 그럴 때마다 오히려 부모의 삶이 자신에게 담보 잡힌 것 같아 슬픔이 더해진다. 엄마(로라 던)는 딸에게 몇 번이고 심리치유 모임에 나가보라는 권고를 했고, 잔소리에 지친 헤이즐은 마침내 모임에 나간다. 가슴 저미는 영화 <안녕 헤이즐>(조쉬 분 감독, 극영화/애정물, 미국, 2014년, 125분)은 그렇게 시작한다.

나이 지긋한 어른이라도 감내하기 힘든 고통. 당장이라도 병이 심각해지면 죽고 말리라는 불안한 생각이 꽉 들어찬 오늘. 그렇게 절망의 하루하루를 보내는 내게 무슨 모임을 나가란 말인가? 어거스터스(안젤 엘고트)가 모임에 등장하기 전까지 헤이즐의 삶은, 엄정한 의미에서 제대로 된 삶이 아니었다.

비록 영화 제목은 <안녕 헤이즐>이지만 설혹 <안녕, 거스>라고 해도 될 법했다. 그만큼 영화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인물이 어거스터스다. 그는 근육암으로 이미 다리 한쪽을 잘라낸 바 있고 혹시 딴 곳으로 전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처지다. 모임에서 만난 둘은 강하게 끌렸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랑을 시작한다. <안녕 헤이즐>이 삶을 반추하는 철학영화가 아니라 애정물인 까닭이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에게는 나이에 맞지 않는 어른스러움이 있다.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남을 밀어낼 줄 알고,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줄기차게 생각하고, 그러다보니 자신들에게 남은 날들을 어떻게 가치있게 보내야 하는지 성찰이 가능하다. 그들은 암에 안 걸린 채 수십 년을 살아도 결코 얻지 못할 지혜를 불과 10대에 터득한 셈이다. 그처럼 삶의 지혜는 나이와 무관하다. 아마 경험의 양이 아니라 질에 좌우되는 문제여서인가 보다.

대사들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정련된 느낌을 줄 정도로 좋았다. 어거스터스는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자신의 몸에 암 세포가 퍼져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표현해놓으니 암이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특히 서로의 죽음을 위해 써놓은 추도사들과 그 추도사를 미리 읽어주는 장면은 인상 깊었다. 남은 이들에게 내가 어떤 의미를 주는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친지들과 한 번쯤 나누고 싶은 경험이었다.

주인공 역할을 한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났다. 특히, 쉐일린 우들리의 연기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녀는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디센던트>(2011)에서 제멋대로인 청소년 역을 멋지게 소화해내더니 <다이버전트>(2014)라는 영화에서는 뜬금없이 초능력 전사로 활약했다. 앞으로 큰 기대를 해도 될 법한 배우다. 갑작스레 등장해 헤이즐에게 충격만 잔뜩 안겨준 채 사라진 피터 반 후텐 역의 윌리엄 데포는 존재 자체가 연기였다. 슬슬 관록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안녕 헤이즐>에서 사랑하는 친구를 잃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가르쳐준다. 더불어 어떤 고통 속에서든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는 숭고한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기회도 준다. 종교적인 차원의 성찰이 가능한 까닭이다. 그러니 장례식이란 헤이즐의 말대로 ‘죽은 자들을 위한 게 아니라 남은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게 옳다.

박태식 신부는 서강대 영문과와 종교학과 대학원을 졸업 후 독일 괴팅엔대에서 신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박태식 신부(영화평론가, 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