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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쉼터] 사제들이 연예인과 ‘치고 받은’ 이유는…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4-10-14 수정일 2014-10-14 발행일 2014-10-19 제 2915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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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야구단-연예인 야구단,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기념 다문화가정 후원 친선경기
한국야구 역사상 사제-연예인 첫 경기
서울·광주·인천·의정부 사제들 팀 결성
연예인측, 이봉원 감독 비롯 20여명 참가
입장료 대신 다문화가정 지원금 모금
13대 9로 사제 야구단 올스타팀 승리
상대편인 사제 야구단 ‘유스띠씨아’(JUSTITIA)의 응원단장을 자처하고 나선 가수 김창렬씨.
신부들은 성경 대신 야구 방망이를, 연예인들은 대본 대신 야구 글러브를 손에 들고 야구장에 모였다. 유니폼 색깔은 다르지만 신부와 연예인들 모두 몸에 달라붙는 야구 유니폼을 맞춰 입었다.

한글날인 9일 오후 2시,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서울, 광주, 인천, 의정부 4개 교구 사제 야구단 올스타팀 ‘유스띠씨아’(JUSTITIA)와 연예인 야구단 올스타팀 ‘한스타’가 친선 경기를 펼쳤다. 사제 야구단 감독은 이정훈 신부(의정부교구 백석동본당 주임), 연예인 야구단 감독은 희극인 이봉원씨가 맡았다. 35명의 사제단과 20여 명의 연예인들이 팀을 이룬 이날 경기는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사제단과 연예인이 경기를 한 날로 기록됐다.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 조규만 주교, 인천교구 총대리 정신철 주교, 광주대교구 총대리 옥현진 주교도 사제 올스타팀과 똑같은 유니폼을 갖춰 입고 문학야구장을 찾았다.

사제단과 연예인들의 야구 경기는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기념하고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인 다문화가정을 후원하기 위한 취지에서 오랜 준비 끝에 성사됐다. 관중석에는 인천교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비롯한 이주민 관련 복지시설 초청을 받은 다문화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필리핀, 베트남 등에서 취업과 결혼을 위해 한국에 이주해 낯선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이주민들은 고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야구 경기를 신기해 하면서도 흥미있게 관람했다.

한글날을 경기일로 잡은 이유 역시 다문화가정의 가장 큰 어려움이 문화적인 차이나 갈등보다 언어 문제라는 사실을 알리려는 데 있었다. 남편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필리핀 출신 결혼 이민자 얍 노리씨는 서툰 한국말로 “소중한 자리에 초대 받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관중석에는 이주민들보다 각 교구 본당에서 온 신자들이 더 많았다. 어림잡아 2000명은 되는 것 같았다. 본당과 교구청에서 사목자로만 만나던 신부들이 야구 선수가 돼 달리고, 치고, 던지는 색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가족 단위 관중들이 대부분이었다. 관중석 여기저기에는 응원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축제 분위기를 더했다.

이기헌 주교는 “신부님들과 연예인들의 공통점은 다른 이들을 기쁘고 행복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연예인들은 웃음을, 신부님들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위로와 행복을 줍니다. 안 어울릴 것 같은 분들이 부조화의 조화를 이뤄 승부를 떠나 경기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기쁨을 선사해 주십시오”라고 인사말을 전했다.

이날 경기의 시구와 시타는 정신철 주교와 옥현진 주교가 맡았다. 인천 사제 야구단의 투수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정 주교답게 힘찬 동작으로 옥 주교를 향해 공을 던졌고 옥 주교는 어색한 타구 자세와는 달리 방망이를 날카롭게 휘둘러 공을 맞춰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7회까지 치러진 이날 경기는 사제 야구단이 13대9로 승리했다. 연예인 야구단도 뒷심을 발휘해 마지막 회에 3점을 따라오는 저력을 보여줬지만 승부를 뒤집지는 못했다. 치열한 경기 중에도 연예인 선수들은 폭소를 자아내는 장면을 선사했다. 희극인 변기수는 7회 마지막 타석에서 포수 파울플라이로 아웃될 위기에 처했지만 박유양 신부(인천교구 유소년부 담당)가 실수로 아깝게 공을 떨어뜨리자 박 신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가수 김창렬은 연예인 야구단 소속이면서도 마이크를 잡고 사제 야구단 응원단장 역할을 맡아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날 무료로 입장한 관중들은 다문화가정 지원을 위한 모금운동에 동참했고 모금액은 이주민지원센터 등 다문화 관련 복지시설에 전달될 예정이다.

사제 야구단과 연예인 야구단 선수들이 경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치열한 경기를 펼친 양팀의 경기 장면. 사제 야구단이 13대9로 승리를 거뒀다. 사진 한스타미디어
타석에 들어선 아이돌 그룹 유키스 전 멤버 ‘동호’가 방망이를 휘두르는 모습. 사진 한스타미디어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