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현대교회의 가르침] (29) ‘제삼천년기’ (2)

전영준 신부
입력일 2014-09-03 수정일 2014-09-03 발행일 2014-09-07 제 2910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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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희년 의미 깊이 새기도록 이끄는데 기여
요한 바오로 2세 “정화 않고 새 천년기 넘을 수 없어”
희년의 기쁨 누리기 위한 과거 교회 잘못 인정 강조
준비기간에 따른 구체적 실천사항·신학적 성찰 제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제삼천년기」를 통해 “희년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교회는 반드시 과거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요한 바오로 2세가 2000년 3월 12일 ‘용서의 날’을 맞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회의 지난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는 모습. 【CNS】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제삼천년기」 교서 발표에 앞서 특별 추기경회의를 통해 이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2000년 대희년을 맞기 위한 준비의 시기가 중요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고 밝히셨다. 그렇기 때문에 6년가량의 기간을 3년씩 두 단계로 나누어서 첫 번째 3년의 제1단계에서는 그리스도인이 2000년 대희년이란 역사적 날짜를 향해 나아가면서 대희년에 걸맞은 주제들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높일 수 있도록 시간을 활용할 것을 언급하셨다. 그리고 두 번째 3년의 제2단계에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기념하는데 더욱 집중하면서 대희년에 대해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인 준비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강조하셨다(30항 참조).

교서는 중반 부분에서 먼저 사전 준비의 성격을 지닌 제1단계(1994~1996년) 동안에 희년의 그리스도론적 의미를 충만하게 살펴보고자 하였다. “2000년의 희년은 특별히 하느님 아들의 육화와 그분께서 성취하신 구원의 선물에 대한 찬미와 감사의 큰 기도이기도 합니다.”(32항) 그러므로 희년의 기쁨은 죄의 용서에 기초한 회개의 기쁨이라고 언급하였다. 하지만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교회는 반드시 과거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극복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교회는 자기 자녀들이 참회를 통하여 과거의 과오와 불충한 사례들, 항구치 못한 자세와 구태의연한 행동에서부터 자신을 정화하도록 격려하지 않고는 새로운 천년기의 문턱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33항)

특히 교서는 참회를 필요로 하는 교회의 대표적인 과오들을 함께 언급하였다. 첫째로 교회는 신앙인이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려 하는데 방해한 자신들의 죄악들을 반드시 짚어 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34항 참조). 둘째로 교회는 과거 어느 시기에 진리를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불용과 폭력 사용을 눈감았던 경우도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35항 참조). 마지막으로 교회는 현 시점에 만연한 어두운 죄악들도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종교적 무관심과 세속주의 및 윤리적 상대주의의 풍토를 만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릇된 견해들을 확산시킴으로써 교회 교도권을 거스르는 불순명을 조장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20세기의 위대한 신앙의 유산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다(36항 참조).

교서는 제1단계 준비를 위하여 꼭 기억해야 할 점으로 교회가 제1천년기에 순교의 시기를 보냈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즉, 교회는 순교자들 덕분에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오늘날 이러한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핍박의 현상은 바뀌었을지라도, 결국 하느님의 뜻을 살기 위해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마저 내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것이다(37항 참조). “2000년을 준비하면서 바로 우리 시대에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따라 살았던 이들의 성덕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면서 보편교회를 위한 순교록을 새롭게 만드는 것은 사도좌의 과업일 것입니다.”(37항)

다음으로 교서에서는 면밀한 준비 단계인 제2단계(1997~1999년) 동안에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는 삼위일체적인 신학적 주제를 의식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 해인 1997년에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하여 희년의 그리스도론적인 성격을 강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유일한 구세주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40항 참조). 이렇게 구원의 신비를 깨닫고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신앙생활의 기초인 세례성사 안에 그리스도의 구원이 성사적으로 현존한다는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41항 참조). “그러므로 첫째 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분의 구원 신비에 관한 ‘사도들의 가르침’이라는 그 본래의 의미로서 교리교육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는 적절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42항)

제2단계 준비 단계의 둘째 해인 1998년에는 교황께서 이미 앞선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에서 강조하였던 성령을 주제로 다루고자 제안하셨다(44항 참조). “따라서 희년 준비의 일차적 과업은 성령의 현존과 활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포함합니다.”(45항) 또한 이 시대에 교황께서 커다란 관심을 표명하셨던 새로운 복음화의 주역도 성령이시라는 점을 강조하셨다. 특히 교회는 종말론적 전망에 따라 새로운 복음화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대희년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이러한 희망의 표징에 대해서 더 잘 인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46항 참조). 그러므로 성령께서 교회에 베풀어 주신 은사와 선물을 통하여 교회는 내적 일치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47항 참조).

마지막 셋째 해인 1999년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전망에 따라 세상 사물을 살펴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의 위격에 중심을 두는 희년은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위대한 찬미 행위가 됩니다.”(49항) 하느님과의 합일의 영적 여정을 잘 걸어가기 위해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아가야 한다. 그와 관련하여 가장 좋은 실천 사항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애덕)의 이중계명을 실천하는 데 있다(50항 참조). 그 중에서도 예수께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길 바라셨던 가르침을 되새겨서 희년을 지내면서 사회교리에 관심을 갖고 강조하며 실천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언급하였다(51항).

이와 같이 교서 「제삼천년기」를 통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대희년을 위한 예비 준비기간과 직접 준비기간 마다 필요한 다양한 실천적인 면도 언급하셨다. 그러나 한편 교서에는 그에 못지않게 신학적인 핵심 주제들을 심도 있게 다루셨던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2000년 준비는 이를테면 본인의 교황직에 대한 해석학적 열쇠가 되어왔습니다. 이것은 제1천년기 말 일부 지역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새로운 천년왕국설(millenarianism)에 빠져 드는 일은 분명히 아닙니다.”(23항) 사실 우리는 20세기 말엽에 한국의 몇몇 종교나 교단에서 거짓 종말론을 유포하고 그러한 주장에 현혹된 믿음에 대한 확신이 나약했던 일부 가톨릭교회 신앙인들을 포함한 그리스도인들이 혼돈스럽고 잘못된 선택과 실천을 했던 사건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러한 거짓 종말론은 1000년을 맞이하던 시기에도 언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 순간에도 변형된 형태를 취하면서 여전히 그리스도인을 잘못된 길로 이끌려 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였는지 교황께서는 우리 신앙인들이 2000년을 그저 하나의 숫자로만 생각하고 기다리기를 바라지 않으셨고, 대희년의 참된 의미를 깊이 새겨볼 수 있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또한 그것을 위하여 몇 년간의 준비 기간 중에 우리 신앙의 핵심 믿을 교리들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그 의미를 깊이 깨닫기를 바라면서 강조하셨던 것이다. 즉,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시며, 역사 너머에 박재되어 있지 않고 역사 안으로 들어오셔서 늘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을 되돌아 보건데, 우리가 2000년 대희년을 맞을 때 거짓 종말론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천년대를 잘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교황의 가르침에 따라 전 세계 교회가 2000년 대희년을 차근차근 잘 준비하며 맞이하였기 때문이라고 평가해 볼 수 있다.

전영준 신부는 1991년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교황청립 로마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전영준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