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안개 속을 걸으면 자신도 모르게 옷이 젖는다 / 최현민 수녀

최현민 수녀(씨튼연구원 원장)
입력일 2014-09-02 수정일 2014-09-02 발행일 2014-09-07 제 2910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한국을 다녀가셨다! 교황님 방한 자체가 한국사회와 교회에 내리신 하느님의 큰 선물이었지만 좀 더 욕심을 낸다면 그분의 오심이 한국교회 쇄신의 기폭제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가톨릭신문은 교황님 방한을 준비하면서 한국 가톨릭교회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가톨릭신문 2898호 10·11면) 그리고 이어 “교황 방한, 응답하라 2014 한국교회”라는 제목으로 특별기획을 마련하고 있다. 시기적절한 기획을 준비한 가톨릭신문사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 기획은 설문조사에서 이슈로 떠올랐던 문제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성직자들의 권위주의, 교회의 세속화, 중산층화 되어가는 교회, 미성숙한 평신도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슈화된 주제들은 한국교회의 쇄신이 광범위하게 필요함을 드러내 주고 있다. 톱니바퀴 마냥 서로 엮여 돌아가는 교회공동체에서 교회 구성원들은 서로 간에 깊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드러난 문제들도 서로가 서로에게 그림자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장회익의 온생명 이론을 빌리자면, 교회 공동체는 하나의 온생명이라 할 수 있다. 온생명 이론에선 온전한 생명체가 되려면 낱생명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보생명을 필요로 함을 말하고 있다. 낱생명이 교회를 구성하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각 개개인이라 할 때 교회의 생명은 각각의 낱생명체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생명활동을 지속하려면 태양과 공기, 바람, 물, 토양이라는 보생명을 필요로 하듯, 교회의 생명 역시 교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낱생명체와 그 낱생명체를 보하는 다른 생명체가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온생명체로서의 교회생명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

앞서 말한 설문조사에서 한국교회에 가장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쇄신은 ‘성직자의 권위주의와 성직중심주의’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 분석에서 한국 가톨릭교회 성직자들의 권위주의 문제는 평신도들의 미성숙함과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 바 있다.(가톨릭신문 제2900호, 11면 참조) 즉 평신도들의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태도가 성직자들의 권위주의를 부추겨왔고 유지케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본당과 교회운영 구조 자체의 변화이며 이를 위해 평신도가 교회운영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평신도를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물론 일리 있는 제안이고 앞으로 본당사목도 이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의구심이 남는 것은 왜일까? 그건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외부에 있다기보다 우리 내면에 있지 않느냐는 생각에서이다.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성직자의 권위주의 문제 역시 근원적 해결의 열쇠는 성직자들 자신이 쥐고 있다. 다시 말해 성직자들의 자성 없이는 결코 이 문제가 해결되기는 쉽지 않겠다 싶다.

지난 6월 2일 선종하신 예수회 정일우 신부님의 장례미사를 다녀왔다. 성당은 신부님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일생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며 스스로 가난한 이가 된 신부님의 삶은 그곳에 모인 모두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자신의 권위를 다 내려놓고 가난한 이들 안으로 들어가 일생을 살았던 한 사제의 삶에서 나는 성직자의 진정한 권위가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불가에선 “안개 속을 걸으면 자신도 모르게 옷이 젖는다” 라는 말이 전해져 온다. 이는 큰 바위 얼굴처럼 닮고자 하는 이와 오래 같이 지내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닮게 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한국교회 안에도 큰 바위얼굴처럼 닮고 싶은 성직자들이 많아졌으면 참 좋겠다. 신품성사를 받을 때 제대 앞에 온몸으로 엎드린 사제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철저히 자신을 ‘내려놓는’ 자세로 일생을 살아 보겠노라는 한 젊은 사제의 약속이 오늘도 뭇 성직자들에게 유효한 약속이기를 하느님께 간절히 빌어본다.

한국에 오셨을 때 환한 미소로 만나는 이들을 대하신 교황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신 삶의 연륜이 진하게 묻어나는 백만 불짜리 미소다! 오늘도 ‘복음의 기쁨’을 가득 품은 한 목자의 미소가 나를 재촉한다. 한국 가톨릭교회에도 이런 미소를 띤 목자가 많아졌으면 하는 소망이 나만의 바람일까?

최현민 수녀(씨튼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