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새 기획 ‘천주가사, 하느님을 노래하다’ 연재 강영애 교수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4-09-02 수정일 2014-09-02 발행일 2014-09-07 제 2910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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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성가의 뿌리 알리는 계기 됐으면”
천주가사 내용 전반 1년 간 다룰 계획
한국 음악 공부하다 천주가사에 매료
“훌륭한 신앙 유산인데 관심 없어 아쉬워”
한국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도 벌써 200여 년이 지났다. 신앙선조들이 남긴 값진 유산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천주가사’ 역시 역사가 남겨 준 보석이다. 우리나라 가락으로 불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당시 신자들의 신앙심을 굳건하게 하고, 공동체 결속을 다지는 윤활유였다. 동시에 한국교회 토착화의 산물이다.

하지만 천주가사는 점차 잊혀지고 신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본지는 지난 8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가 시복된 것을 계기로, 한국교회 전통 문화를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한다. 천주가사에 담긴 신앙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며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기획이다.

연재에 앞서 앞으로 1년 간 ‘천주가사, 하느님을 노래하다’를 연재할 강영애(데레사) 한양대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의 신앙이 어디서 왔는지 뿌리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음악의 뿌리, 천주교의 뿌리를 찾아서 관심을 가져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천주가사는 신앙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나의 신앙을 살펴보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악을 전공한 강영애 교수는 한국 전통음악을 공부하면서 “천주교가 유입된 1700년대에도 교리가 노래로 불리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모태신앙이었던 강 교수는 한국교회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렇게 처음으로 ‘천주가사’를 접했다.

“천주가사는 연구할 것이 무궁무진해요. 민요뿐 아니라 정악 스타일의 가사도 발견하게 됐죠. 또 1920~30년대에는 창가 형식의 가사가 나타났어요. 현지 문화에 토착화되는 것은 물론 그 시대의 문화와도 융합돼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졌습니다.”

연구는 천주가사 형태에 국한되지 않았다. 최양업 신부와 민극가 스테파노 성인 등이 대표 저자로 밝혀졌지만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저자들이 많다. 강 교수는 앞으로 계속 발굴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천주가사에 대한 연구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 교수는 기획 ‘천주가사, 하느님을 노래하다’를 통해서 천주가사와 한국교회 성가의 뿌리를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천주가사의 의미와 가사에 대한 설명을 비롯, 천주가사 20~40곡의 저작자와 특징을 중심으로 다룰 계획이다. 이를 발판으로 전문가들이 편곡, 재구성해 생명력을 불어넣은 일본 전례동요처럼 천주가사가 현대의 문화와 만나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하기를 바랐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정착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천주가사를 반드시 알아야 해요.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신앙선조들의 유산이지만 지금은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이제는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강영애 교수는 음악인류학 박사로, 한양대와 교회음악대학원 강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대전교구, 마산교구 가톨릭상장례봉사자교육 전문강사이며, ▲천주가사의 의미와 특징 ▲천주가사집 소개 ▲노래로 불려진 천주가사 소개 ▲가사와 전통음악의 특징 등을 연구했다.

■ 천주가사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가사’라는 한국 전통적인 문화가 융합돼 탄생한 것이 ‘천주가사’다. 가톨릭교회 문화의 토착화를 잘 보여주는 천주가사는 성직자와 지식인 신자들이 문맹자들의 교리 교육을 위해 만든 것으로, 교리와 신앙의 가르침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했다. 특히 당시의 대중 가사 형식을 빌려 작사한 것이 특징적이다. 천주가사의 형태는 전통적인 양식인 3·4조, 4·4조를 기본으로 하며, 개화기 단형 가사 형식인 6·5조, 7·5조, 8·5조까지도 포괄한다.

하느님을 섬기고 영혼 구원을 갈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천주가사는 ‘천당 노래’, ‘천당 강론’이라고도 불렸다. 5~6세의 어린이들은 어머니, 할머니와 더불어 주요 기도문과 함께 천주가사를 배웠으며 여성들은 천당 노래를 부르면서 시련과 고통을 넘어 공포와 죽음을 극복했다고 한다.

천주가사를 곡조에 맞춰 노래한 것은 1900년 이후다. 가사의 전승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거나 공동체적 결속을 다지기 위해 그 시대에 널리 유포된 노래의 곡조를 차용하거나 단조로운 곡을 붙여 불렀다. 1920년부터는 「죠션어 셩가집」 등에 천주가사의 일부가 인용됐다. <가톨릭대사전 참조>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