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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위 복자 탄생] 시복식에 함께한 사람들

특별취재팀,사진 공동취재단
입력일 2014-08-19 수정일 2014-08-19 발행일 2014-08-24 제 2909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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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만나고 싶어…” 새벽부터 광화문 인산인해
124위 시복미사가 봉헌된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미사 참례자 17만 명을 포함, 100만 명의 사람들이 운집했다.

100만 모여도 ‘질서정연’

◎…시복식이 열린 광화문 광장 일대에는 17만 명이 넘는 신자들을 포함해 100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운집했다. 역사적인 124위 순교자 시복식을 지켜보기 위해 행사장을 찾은 이들은 시복식장 입·퇴장, 화장실 이용 등에서 질서정연한 태도를 보이며 매끄러운 행사 진행을 위해 힘을 보태는 모습. 특히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1시간 안팎의 시간을 기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양보하고 질서를 지키는 모습이었다.

퇴장할 때도 봉사자 안내에 따라 지정 출입구를 이용, 귀가하는 길도 빨라졌다. 퇴장 순서를 기다리며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기도.

이런 모습 덕에 경찰은 당초 이날 오후 5시쯤 교통 통제를 풀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시복식이 끝난 지 3시간여 만인 오후 3시30분쯤 광화문 광장 일대의 교통 통제가 해제됐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연령도 다양

◎… 이날 시복 미사에는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가했다. 고국에서 열리는 교황 방한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중국에서 아들 이유찬(라파엘)군과 시복식 행사장을 찾은 이혜영(스텔라·중국 칭타오 한인본당)씨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개학이 12일이어서 4일이나 학교 안 가고 교황님 보기 위해 한국에 왔다”면서 “세례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저희 모자에게는 영광된 순간이었다”며 감격해했다.

대학생 커플로 행사에 참가한 조남현(레오나르도·서울 상도동본당)·서영란(도로테아·춘천 죽림동본당)씨는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해 기쁘고, 평생에 몇 번 없는 기회에 동참하고 싶었다”며 “오늘 미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웅장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제 갓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이들도 시복식에 참석했다. 지난 10일 나란히 세례를 받은 최만술(안드레아·서울 발산동본당)·손옥심(데레사)씨 부부는 예비신자 교리를 받으면서 시복식 참가자 모집에 지원, 대부·대모와 함께 시복식에 참가했다. 부부는 “가톨릭 신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교황님을 뵙게 된 것은 큰 영광”이라며 “교황 방한이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참가 소감을 밝혔다.

제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초대된 장애인 참례자들.
시복미사 중계 중인 해외 언론.
119 대원들이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모습.

가까이서 보려 먼 길 한걸음에

◎… 가장 먼 제주교구에서 전날 비행기로 올라온 강경남(안셀모·제주 광양본당)씨도 새벽 3시경 광화문 출입 검색대에 도착해 입장을 기다리며 “항상 낮은 자세로 모범을 보여주시는 교황님을 가까이서 뵙게 돼 멀리서 한 걸음에 달려왔다”고 전했다.

미처 행사장을 출입할 수 있는 비표를 받지 못했지만 교황을 보기 위해 무작정 상경한 이들도 눈에 띄었다. 새벽 3시 경북 풍기를 출발했다는 10여 명의 신자들은 광화문 인근 교보생명빌딩 앞쪽 자리 펜스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집에서 싸온 주먹밥을 나눠먹으면서 “가까이서 교황님을 볼 수 없어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교황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하나도 힘든 줄 모르겠다”며 웃음을 지었다.

비표가 없는 이들은 조금이라도 교황을 가까이에서 보려고 자리 확보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통행로가 비좁아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비켜달라는 안전요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서울 종로구에 사는 한 70대 할머니는 전날 오후 8시 시복 미사가 열리는 광화문에 답사를 나왔다. 교황이 지나갈 것으로 추정되는 좋은 길목에 자리를 잡았지만 길 위에서 밤을 샐 수 없어 집에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에 나와 보니 안전펜스가 설치돼 원래 봐둔 자리로 갈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아쉬운 대로 교황을 볼 수 있는 제대 가까운 곳을 찾은 할머니는 “프란치스코 교황 대단하다.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에 나왔어. 고령인데 미사에 연설까지 쉬운 일 아닌데…. 대단하게 느껴진다”며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신자들이 16일 새벽부터 줄을 서고 있다.
시복미사 제대를 꾸미는 모습. 늦은 밤에도 시복식 준비는 계속됐다.
시복식 입장객들이 출입 전 검문을 받고 있다.
비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구역 외 지역에서라도 시복식에 함께하고자 모여들었다.

“신자 불편 없도록” 숨은 공신들

◎… 자원봉사자들은 시복 미사의 숨은 공신. 각 구역별로 배치된 봉사자들은 미사 중간중간 신자들이 미사 전례에 잘 참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신자들에게 물을 나눠주고, 매순간 신자들의 불편함을 확인하면서 적극적으로 봉사에 임했다.

봉사자 정재훈(화경안드레아·서울 청담동본당)씨는 “처음 봉사자 합격 발표를 듣고 큰 시험에 붙은 것처럼 짜릿했다”며 “신자들이 많이 참석해 행사장에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을 걱정했는데, 신자분들이 안내에 잘 따라주셔서 무사히 끝낼 수 있어 감사하다”고 밝혔다.

시복식 자원봉사자로 새벽 2시에 광화문에 일찌감치 도착한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회 이영애(데레사)씨도 “순교자들이 영광스럽게 시복된다는 사실에 너무나 흥분되고 설레 밤을 꼬박 새우고 나왔다”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행사장 인근 상점들은 펜스 안쪽 신자들의 편의를 위해 배달판매에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원래 행사장에는 페트병, 유리병 등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있었지만 보안 절차를 거쳐 펜스 안에 입장한 뒤에는 보안 규정이 풀리면서 생겨난 풍경.

다행히 햇빛이 나지는 않았지만 후텁지근한 날씨에 행사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찾은 물품은 생수, 물티슈, 각종 음료 등이었다.

시복식 봉사자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이동하고 있는 모습.

▲시복식장에 비친 ‘강한 빛’

“성령이 임하십니다!”

신자들의 광화문 시복식장 입장이 마무리되던 16일 오전 7시 제대 인근 성가대석 옆에 자리한 한 신자가 놀란 목소리로 “저기 보세요. 성령이 임하십니다”라고 외쳤다. 그 소리에 부근 신자들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시복식 아침까지도 비가 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고 짙은 구름이 덮고 있던 하늘은 다소 어둡게 보이던 상태에서 구름을 뚫고 강한 빛이 여러 갈래로 일제히 뻗쳐 나오는 순간에 신자들은 시복식에 성령께서도 함께하시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별취재팀,사진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