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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프란치스코 교종 한국방문 의미 / 김혜경 박사

김혜경 박사
입력일 2014-08-19 수정일 2014-08-19 발행일 2014-08-24 제 2909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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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소통·대화·협력 증진시켜야
상처 어루만지며 손 잡아준 교종의 ‘낮은 행보’
물질 번영 속 정신적 빈곤 겪는 한국 사회 위로
갈등·대립의 초라한 우리 현실 되돌아보는 계기
‘평화·사랑의 가치 실현’ 신앙인들에 남겨진 과제
2014년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우리는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평소 소탈하고 겸손하고 탈권위적인 자세로 누구와도 소통하고 특유의 미소와 위트로 교회 안팎의 개혁을 선도하며, 전 세계적으로 ‘포프 이펙트’, ‘포프 신드롬’을 일으키고, 올봄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지구촌 영향력 1위 인물’로 선정했다는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우리와 함께 지냈다.

그분과의 시간이 왜 이렇게 꿈만 같았을까? 정치권의 정쟁 속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바라는 유가족들의 눈물이 이 땅을 적실 때, 청년 실업과 장애인 문제와 약자들의 생존권 해결을 바라는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려퍼질 때, 교종께서는 14일 서울공항 도착에서부터 18일 한국을 떠나는 시각까지,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절규를 들어주고 상처를 어루만지며 손을 잡아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분의 낮은 행보를 익히 듣지 못했다면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분의 이런 행보에 주목하지도 위로를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결국 그분의 행보를 보면서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을 외면하지 않으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초라하던지 몇 번이고 가슴이 먹먹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너무도 많은 사건과 사고들로 인해 국민적인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다치고 상처입고 부서진 구석이 너무도 많았다. 아니, 어쩌면 멀쩡한 곳 찾기가 보물찾기보다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보면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우리의 미래는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밀양 송전탑 건설 지역의 주민들을 보면서 약자의 생존권은 언제든지 무시되고 강탈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고, 강정마을의 주민들을 보면서 평화가 얼마나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문제인지를 인식하게 되었으며, 세월호 참사와 윤 일병 사건을 통해 이 땅에서 부모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일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런 우리에게 프란치스코 교종은 ‘물질적 번영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빈곤과 외로움, 남모를 절망감에 고통 받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며 78세의 노구를 이끌고 찾아오셨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이번 한국방문은 여러 면에서 새로운 역사로 남게 되었다. 잘 알려지다시피, 하나는 2014년 8월 13~17일 대전교구에서 개최되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AYD)에 역사상 최초로 교종께서 직접 참석하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순교자들의 시복미사를 현지에서, 특히 순교의 현장을 바라보며 직접 집전하셨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재위 1년 5개월 동안 전 세계의 청년들에게 보여준 따뜻한 사랑과 관심, 배려는 그 자체로서 전 세계적 청년실업의 문제를 안고 있어 ‘일자리 없는 세대’라고 불리는 청년 세대들에게 커다란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다. 15일 솔뫼에서 있었던 아시아청년들과의 삼종기도에서도 “병든 이들과 가난한 이들, 존엄한 인간에 어울리는 일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을 자비로이 굽어보시도록 간청한다”고 말하였다.

어느 국가건 청년 세대는 그 나라의 미래를 상징한다. 청년 세대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비전을 갖지 못하면, 그 나라는 한 마디로 미래가 없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교종께서는 교회는 미래를 위한 튼튼한 씨앗으로서 청년 세대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이 가진 무한한 역량을 세상과 교회를 위해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청년 세대들은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 안에서’ 보다 나은 세상을 건설하려는 책임과 사명을 지녀야 한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교종께서는 청년들이 진정으로 기쁘게 복음을 증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힘을 믿고, 기도를 통해 주님 안에 머무르며,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를 복음 말씀에 따라 행하라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이번 방한의 또 다른 중요한 포인트로 시복미사가 있었다. 시복식이 거행된 광화문 일대는 조선시대 천주교 신자들의 박해를 결정한 권력의 중심지였고, 의금부, 포도청, 서소문 형장 등 한국의 제1세대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친 장소들과 밀접하게 연결된 곳이다. 이런 곳에서 시복식을 거행했다는 것은 순교자들과 권력과의 화해, 당시 국가로부터는 ‘사학죄인’이요 동족으로부터는 ‘천주학쟁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순교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권리를 되찾아 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이번에 시복된 124위 가운데 중국인 주문모 신부님을 제외한 나머지 123위의 순교자들은 한국 천주교회의 초석을 놓은 평신도들이다. 이들은 제1세대 순교자들로, 먼저 시성이 된 103위 순교성인들을 길러낸 세대들이다.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성 정하상의 아버지이고, 김진후 비오는 성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이며, 이성례 마리아는 현재 시복을 준비하고 있는 두 번째 한국인 사제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다.

이렇게 혈육으로 순교성인들을 길러낸 세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신앙으로 순교성인들을 길러낸 세대들이기도 하다. 예컨대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는 신앙 때문에 제사를 거부했다가 순교당한 첫 순교자였고, 강완숙 골롬바는 조선 천주교의 첫 여성 리더였으며, 유항검 아우구스티노는 호남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사도였고,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은 신앙으로 동정을 지킨 부부였다.

이런 다양한 평신도들의 신앙의 면모는 그동안 한국교회를 평신도에 의해 세워진 교회라고 했던 역사를 공식적으로 확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에 의해 조선사회에서 천민들도 같은 인간이라는 평등사상이 전파되고, 이로써 계급타파와 신분제 철폐가 시작되었으며, 여성과 아동에 대한 의식이 새롭게 대두되었다. 순교자들은 엄격한 사회 구조 속에서 인간 존중의 가치를 지키며 형제적 삶을 이루고자 했고, 그래서 형제들의 필요에 외면하지 않고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가지 계명을 분리하는 데 대해 그들은 과감하게 거부했고, 그것 때문에 목숨까지 초개같이 버렸다.

평범한 사람들이 지키려다 순교한 이런 보편적 가치들은 사실 오늘도 우리사회의 도처에서 끊임없이 도전받고 위협받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종께서는 시복식 미사 강론에서 “순교자들의 모범은 막대한 부유함 곁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많은 일깨움을 줍니다”고 했던 것이다.

16일 음성 꽃동네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애아동을 안아주고 있다. 교황의 낮은 행보는 가난한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과제를 우리에게 남겼다. 사진 공동취재단

방한 기간 동안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도처에서 순교자들의 이런 고귀한 정신을 강조했고, 그것을 지켜야할 귀중한 가치라며 청년들에게 선물로 물려주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이번 아시아청년대회의 주제 “젊은이여 일어나라, 순교자의 영광이 너희를 비춘다”는 바로 이점을 상기시켜준다고 하겠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우리가 지쳐서 외면한 우리의 문제들을 놓치지 말고 직시하라고 촉구하였다. 인생에서 참으로 지켜야 하는 중요한 가치는 겉으로 보이는 부(富)와 명예가 아니라 평화와 사랑이라고 일깨워 주었다. 당신의 눈길이 머무는 그곳을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바라보라고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이제 과제는 우리에게 남겨졌다. 세계화는 청년 세대부터 노인 세대까지 각 세대가 갖는 문제들까지 세계화시켰다. 아시아청년대회는 바로 이점을 확인하는 기회였고, 시복미사는 우리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대립으로 상처받은 이들을 외면하고서는 결코 평화를 건설할 수 없으며 미래를 보장할 수도 없음을 깨닫는 자리가 되었다. 이것은 우리 각자에서부터 남북 간의 문제, 나아가서는 동북아의 평화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는 가운데 손을 잡고 나가야 한다는 것, 그래야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교종께서 말씀하셨듯이,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사회 풍토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김혜경(세레나) 박사는 로마 우르바노대학교에서 선교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대우교수,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저서로 「Sciamanesimo e Chiesa in Corea」, 「일곱 언덕으로 떠나는 로마 이야기」(인문산책, 2011년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서강대 출판부, 2012년)등이 있으며 2013년 제17회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김혜경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