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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의 가르침] (26) ‘진리의 광채’ (1)

정희완 신부
입력일 2014-07-29 수정일 2014-07-29 발행일 2014-08-03 제 2906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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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따르는 윤리적 삶 천명
다원주의·상대주의로 인해 신앙-윤리 별개로 여기는 등 교회 가르침 왜곡되는 위기
심지어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의심과 반대 팽배한 현실 지적
성경·사도적 전승 바탕으로 교회의 근본 진리 상기시키고 윤리 가르침 전체 성찰 모습 보여
세상 속에서 비춰지는 교회의 모습들 가운데서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미지는 윤리의 교사로서의 교회 이미지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세상의 윤리 문제들에 개입해서 교회의 가르침을 제시하는 일종의 윤리 교사의 역할을 해왔다. 윤리적 혼돈의 수위가 높아지고 도덕적 가치의 상대주의가 더 큰 목소리를 얻어가는 현대 세계에서 교회는 더욱 윤리 교사로서의 자신의 임무를 자각하는 것 같다. 때때로 교회가 고루한 도덕 선생의 이미지로 보일 수 있는 위험도 간혹 있지만, 도덕과 윤리의 원리와 원칙을 정초하기 어려운 현대 세계 안에서, 윤리와 도덕에 관한 교회의 입장 표명은 매우 중요하다.

1993년 8월에 반포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열 번째 회칙인 「진리의 광채」는, 세속의 윤리적 혼란과 교회 안에서 마저도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회의가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 다시 한 번 “성경과 살아 있는 사도적 전승에 바탕을 둔 윤리적 가르침의 원리를 제시”(5항)하려는 교회의 노력이다.

이 회칙의 현실 진단에 따르면, 주관주의와 개인주의의 영향 속에서 윤리와 가치의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의 흐름이 현대 세계 안에서 윤리적 규범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자체 안에도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과 관련하여 인간적,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심지어 신학적 성격을 띠고 있는 수많은 의심과 반대가 팽배하고”(4항) 있는 현실이라고 회칙은 지적한다. 회칙은 현대 사회에 만연한, 신앙과 윤리가 별개의 문제로 여겨지는 경향, 진리와 자유 사이의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유대의 부정, “내적으로 악한 행위를 언제나 예외 없이 금지하는 윤리 계명의 보편성과 불변성”(115항)을 강조하는 자연법적 전통과 개념들을 거부하는 풍조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이 회칙의 기본 목적은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이 왜곡되고 부정되는 위기 속에서, 가톨릭 교리의 근본 진리를 상기시키기 위해,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 전체에 대한 성찰을 제시하는 것이다. 회칙은 결혼과 성 윤리, 이혼과 재혼의 문제, 낙태와 생명의 문제, 동성애 문제 등, 구체적 윤리문제들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윤리 신학의 근본 문제들에 대한 일종의 학문적(disciplinary) 성찰의 성격을 띠고 있다. 특히 2장의 내용은 높은 차원의 윤리 신학적 논의를 담고 있다. 회칙 스스로가 무엇보다도 윤리 학자와 윤리 신학자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특히 회칙은 교회의 전통적인 윤리적 가르침에 대한 의심과 회의를 표출하는 교회 안의 일부 윤리 신학자들을 암시하면서, 교회 안에서의 윤리 신학자의 직무와 봉사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109항-113항). 이처럼 회칙의 목적이 학문적 특성을 지니고 있고 회칙의 주 대상자가 윤리 신학자들이기 때문에 회칙의 내용을 일반 신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좀 어렵다.

회칙의 기본 얼개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마태오 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과 예수님과의 대화의 내용을 매개로 해서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성서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2장은 현대 윤리 신학에 나타난 세속적 경향과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기본 원리들에 관한 신학적 논의를 담고 있다. 3장은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사목적, 실천적 노력들에 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회칙들이 그러하듯이, 「진리의 광채」 역시 성서적, 신학적, 사목적(실천적) 논의 구조를 띠고 있다.

윤리 문제들에 대한 대답이며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날 윤리 문제에 있어서 어떤 절대적 기준과 규범을 찾기가 점점 어렵다. 계몽주의 전통과 문화 인류학의 발전은 가치와 윤리에 있어서 다원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거대 담론과 메타 담론의 상실을 주장하는 현대 세계 안에서 “진리”라는 용어는 매우 낯선 것이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의 제목으로 “진리의 광채”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교회는 언제나 진리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윤리 문제들에 있어서 절대적 진리임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마태오 19,16)라는 질문을 던진 부자 청년은 “인간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 다가와 윤리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모든 사람”(7항)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또한 그 질문의 내용은 “윤리적 선과 자신의 삶의 완성 사이의 연관성”(8항)을 포함하고 있다. 회칙은 분명하게 “오늘날 사람들이 무엇이 선한 것이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을 들으려면 다시 한 번 그리스도께 돌아가야 한다”(8항)고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교 윤리의 본질적이고 본래적인 기초임”(19항)을 표명한다.

회칙은 비신앙인이라 할지라도 선과 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윤리적 요구에 따라 살아간다면 구원의 길이 열려 있음을 천명한다(3항). 윤리적 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곧 선 자체이신 하느님께로 돌아감을 뜻한다는 것이다(9항). 즉, 인간 안에 심어진 자연법을 따라 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윤리적인 문제에 결정적 답을 줄 수 있는 분은, “하느님의 계명을 자세히 설명하고, 사람들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초대하며, 새 생명을 위한 은총을 주는”(25항)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회칙은 윤리 문제들에 있어서 규범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진리는 추상적 관념의 진리가 아니라 인격적 진리임을 거듭 선언한다. 회칙은 진리의 문제에 대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인격주의(personalism)적 접근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세상의 윤리 문제들에 개입해서 교회의 가르침을 제시하는 일종의 윤리 교사 역할을 해왔다. 도덕과 윤리의 원리와 원칙을 정초하기 어려운 현대 세계 안에서, 도덕과 윤리에 관한 교회의 입장 표명은 매우 중요하다. 사진은 2006년 7월 8~11일 이탈리아 파도바 안토니아대학교에서 열린 제1회 국제 가톨릭윤리신학자 학술회의 장면.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자유와 진리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윤리 신학의 기초

회칙은 현대 윤리신학의 흐름 속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교 윤리에 대한 왜곡과 부정의 경향들에 대한 교도권적 식별을 강조하면서 건강한 윤리적 가르침을 위한 윤리신학의 쇄신을 요청한다. 회칙은 “어떤 특정한 신학 체계나 철학 체계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29항)고 분명하게 밝힌다. 단지 식별을 위한 윤리 신학의 필수적 원칙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가르치고자 한다.

회칙의 진단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자유만을 강조해서 진리와 자유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유를 절대적인 것으로까지 격상시켜, 모든 가치의 원천이 되게 해서”(31항) 진리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32항). 이러한 경향은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즉, 현대의 주관주의와 개인주의의 풍조 안에서 자유와 양심이 진리에 기초하지 않고 “성실성과 진실성 그리고 ‘편한 마음’(sincerity, authenticity, and ‘being at peace with oneself’)”이라는 기준에 정초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회칙은 지적한다. 따라서 회칙은 자유와 양심은 언제나 진리를 추구해야 하며 진리에 순응해야 함을 강조한다. 참된 자유는 오직 진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참된 윤리 신학은 “자유가 지닌 진리에 대한 의존성을”(34항)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이런 관점에서 회칙은 2장에서 자유와 법(35-53항), 양심과 진리(54-65항), 근본적 선택(65-70항)이라는 윤리 신학의 필수 주제들을 다루면서 윤리적 행위의 본질(71-83항)에 대해 설명한다.

윤리적 선은 교회의 쇄신과 사회의 변화를 지향

회칙은 진리를 행하는 것이 윤리적 선임을 천명한다(84항). 윤리적 선을 실천하는 것은 교회 생활의 쇄신과 사회생활의 쇄신을 뜻한다. 회칙은 거듭 진리와 자유, 신앙과 윤리의 긴밀한 연결을 강조한다. 회칙은 그리스도의 진리와 연결되어 있는 객관적 윤리 규범들이 정의롭고 자유로운 사회의 기초임을 거듭 천명한다. “복음화는 윤리의 선포와 제시까지도 포함한다”(107항). 왜냐하면 복음의 선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 선과 악에 대한 진리의 목소리”(117항)를 반영해야하기 때문이다.

정희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