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복음생각 (881) 우리는 하늘나라에 들어와 있습니다 / 김동일 신부

김동일 신부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
입력일 2014-07-15 수정일 2014-07-15 발행일 2014-07-20 제 2904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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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일(마태오 13,24-43)
하늘나라는 서두르지 않는 마음을 가질 때 만나게 되고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밭에 좋은 씨를 뿌려도 언제, 어디서 나왔는지 가라지는 생깁니다. 그 가라지를 뽑아내지 않고 수확 때까지 기다리는 그 마음에서 우리는 하늘나라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자꾸만 완벽한 사람이 되고자 애씁니다. 애쓰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만 우리가 그렇게 돼야만 한다는 생각에 속박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완벽하지 못한 많은 것들에 화를 내고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가라지가 너무너무 많습니다. 내 마음 안에도 얼마나 많은지 셀 수가 없습니다. 마음 안에 그렇게 많은데, 밖으로 드러나는 가라지들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그 모든 가라지를 우리는 다 뽑아내려고 합니다. 하나하나 다 이름을 붙이고 그것들을 솎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뽑아내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입니다. 그렇게 학교와 사회에서 배우고 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라지를 한참 뽑고 일어나 뒤를 보는데, 가라지가 또 자라있습니다. 맙소사!

전체 밭을 보세요. 밀과 가라지 중 어느 것이 더 많습니까? 당연히 밀입니다. 가라지는 정말 얼마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는 가라지보다 훨씬 더 많은 밀이 예쁘게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라지만 줄기차게 뽑는다고 세월 다 보내고 있습니다. 밀이 얼마나 멋지게 자라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에게서 받은 그 좋은 씨에서 자라고 있는 많은 탈렌트와 은사를 우리는 멀찍이 밀어두고, 원수가 몰래 뿌려놓은 가라지에 집중합니다. 원수 녀석이 얼마나 통쾌해하며 즐거워하겠습니까? 계속 원수 놈의 흉계에 걸려 넘어지시겠습니까? 더 이상은 아닙니다. 가라지를 가라지로 보고 그래 네 녀석들 자라봐라, 나중에 수확 때에 다 모아서 불살라버릴 테니.

하루를 돌아보면, 못마땅한 일들이 참 많습니다. 왜 그때 그렇게 말했을까? 왜 더 잘하지 못했을까? 네, 더 잘했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 순간 최선을 다했습니다. 가라지가 아니었습니다. 가라지라고 스스로를 비하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에게는 정말 많은 밀이 자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뿌려 놓으신 좋은 씨를 의심하고 계시는 것은 아니시죠? 그분께서 좋은 씨를 뿌리셨고, 매일 신경 써서 돌보시고, 좋은 거름을 듬뿍 주고 계십니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얼마나 좋은 분들이 많습니까? 부모님, 형제, 자매, 친구, 동료, 이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살 찌우고 건강하게 하고 좋은 일들을 많이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하느님의 손길이지 않습니까?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내가 지금 밀인지, 가라지인지? 나에게 밀이 많은지, 가라지가 많은지? 이런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하느님께서 좋은 씨를 뿌리셨고, 잘 키우신다는 믿음으로 선물로 주어진 오늘을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고민하게 하는 놈이 바로 원수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아름다운 자녀들 아닙니까? 우리가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에게는 벌써 우리는 완벽합니다.

밀과 가라지가 반반 섞여 있어도 우리는 완벽한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가라지’가 많은 완벽하고 아름다운 하느님의 자녀로 행복하게 사는 그때가 하늘나라를 맛보는 순간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맞죠?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동일 신부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