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쉼터]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기- 이양래·조산 씨 부부

서상덕 기자,김진영 기자
입력일 2014-04-22 수정일 2014-04-22 발행일 2014-04-27 제 2892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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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 함께 사는 이웃이고 싶어요
언어·문화 차이 등 걸림돌 서로 노력하며 극복
이미 ‘다문화 사회’ 진입했지만 인식 부족 여전

이주사목위 등 다양한 활동 전개 불구하고
일선 본당·신자들 삶에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
도움 베풀 대상 아닌 ‘동등한 이웃’으로 여겨야
조산 아야오 톨리쿠(Josan ayao tolico·31·전주 용머리본당)씨의 하루는 그야말로 정신이 없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지경일 때가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전에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 복지관에서 영어 수업을 진행하는 얼핏 단순해 보이는 일과지만, 이 하루에 네 자녀가 끼어들면 일이 어디로 뛸지 모른다.

복지관에서도 정신이 없기는 매한가지. 잠시도 쉬지 않고 돌아다니고 주절대는 아이들을 돌보고, 간식을 챙기고 나면 어느새 퇴근시간이다. 부랴부랴 퇴근 준비를 하고 차를 몰고 집에 돌아와 식사 준비를 시작할 무렵이면 어김없이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왔다고 경적을 울려댄다.

올해로 결혼 8년차인 이양래(그레고리오·46)·조산씨 부부는 전주교구에서 금슬 좋기로 유명하다. 전북이주사목센터에 일이 있을 때마다 나란히 함께 와서 봉사활동을 하는 부부를 보고 그 비결을 알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이들 부부가 처음부터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 평범한 삶이 도무지 평범하지 않은

조산씨는 지난 2006년 1월 고향 필리핀을 떠나 한국 땅에 처음 걸음을 내딛던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벌렁대기 시작한다. 한국어의 ‘한’자도 몰랐던 조산씨. 남편만 믿고 한국 땅에 왔지만 공기부터 다르게 다가왔다. 이씨는 불안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내를 위해 아내의 고향 말인 필리핀 타갈로그어 단어장에 의지해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이끌었다. 하지만 부부의 연을 맺어 사랑을 키워나가기에는 언어 문제로 인한 걸림돌이 적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씨 부부의 도전이 시작됐다. 틈틈이 한국말과 문화를 전수하는 남편 이씨의 가르침도 한계가 있어서 부부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을 백방으로 찾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선너머종합사회복지관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지 않았지만,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내가 자주 외출하는 것을 두고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다. 자꾸 밖으로 나돌면 헛바람이 들어 어찌 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주위 어르신들 가운데 결혼이주 여성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와서는 곧이곧대로 말하는 분들 앞에서는 가슴이 답답해지더군요.”

그나마 이씨의 경우에는 아내 조산씨와 신앙적인 면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점에서 공유하는 지점이 많아 갈등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결혼을 통해 맺어진 많은 다문화가정의 경우 일차적인 의사소통의 문제에서 파생되는 갈등은 물론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결혼이주민들을 위해 정부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지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어려움을 함께 나누려는 곳도 적지 않지만 언어 문제로 연결되기가 쉽지 않다는데 또 다른 한계가 있다.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에서도 결혼이주민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있다. 특히 개신교에서 적극적이다. 이로 인해 천주교 신자인 결혼이주여성들이 종교가 다른 시댁과 갈등을 빚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조산씨의 경우는 먼저 한국으로 이주해온 이모가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전혀 연고가 없는 이주여성들의 경우에는 이주민공동체나 유관기관의 도움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산씨도 한국에 들어온 초기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필리핀공동체에서 고향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정보도 교환했다.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결혼이주여성들의 외출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조산씨처럼 가정을 돌보면서 본당이나 지역사회 안에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존감을 찾아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저는 그나마 나은 축에 드는 것 같고…. 한국에 들어와 사는 이주민들 가운데는 도움을 청할 방법조차 모르는 이들이 태반일 것입니다. 이럴 때 누구라도 먼저 다가가는 이가 있다면, 아마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구세주 같이 여겨질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기도 중인 이양래·조산씨 가족 모습. 올해로 결혼 8년차인 이들은 전주교구에서 금슬 좋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다르다는 이유로 편견을 갖고 대하는 경우를 적잖게 겪는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 평범한 일상을 향해

전체 인구 대비 이주민 비율이 2.5%가 넘으면 다문화 국가로 분류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2008년 이주민 인구가 2.5%를 넘어서면서 다문화 사회가 됐다.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12년 12월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등록 외국인만 93만여 명에 이르고 단기 체류 외국인은 32만여 명, 거소신고 외국인 19만여 명 등 총 144만여 명(2.8%)으로 다문화가 일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0년, 우리나라의 총 혼인 건수(32만6104건) 대비 국제결혼(3만4235건) 비율은 10.5%로 결혼한 10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이라는 점이 이 같은 현실을 잘 보여준다. 수적인 현상으로만 볼 때 우리 나라는 이미 다문화 사회 성숙기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지만 다문화를 대하는 의식 수준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한 집단 따돌림과 소통의 문제로 인한 불화, 3D 업종에 종사하면서도 여러 불이익을 당하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은 이제 더 이상 뉴스거리도 되지 않게 됐다. 대신 이주민이 연루된 범죄라도 발생하면 당장 아무 관련이 없는 다른 이주민들도 나다니기조차 힘든 사회적 분위기가 연출된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아시아 등 저개발국가 출신 이주민의 범죄율은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의 범죄율보다 낮으며, 한국인이 저지르는 범죄율보다도 현저히 낮다. 그에 반해 이주민의 범죄피해율은 한국인의 그것보다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교회 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와 각 교구 이주사목 관련 부서 및 기관 등에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지만, 아직 일선 본당이나 신자들의 삶에까지 뿌리내리지는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주민들을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도움을 베풀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시각이 여전하다. 이 때문에 지역 본당에서 신자 이주민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여겨진다.

조산씨는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임에도 피부색이나 쓰는 말이 다르다는 이유로 편견을 갖고 대하는 경우를 적잖게 겪게 된다”면서 “교회 안에서조차 관계 속에서 기쁨을 얻지 못한다면 공동체도 활력을 잃고 복음의 힘이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큰딸 진희(마리아)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산씨는 한국의 평범한 엄마들처럼 아이 걱정이 한창이다. 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지나 않을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하지만 조산씨에게는 이런 걱정들에 또 다른 걱정이 늘 따라다닌다. 이주민인 자신 때문에 자녀들이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되지는 않을지.

조산씨를 비롯한 다문화가정들과 이주민들이 똑같은 출발선에서 평범한 일상을 고민한다는 것은 아직은 꿈같은 일인 듯하다.

남편 이양래씨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언어 문제 다음으로 어려워하는 것이 문화 차이”라며 “한 형제 한 식구로 받아들여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나갈 때 차이가 건강한 자극, 활력소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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