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서정홍

서정홍(안젤로·농부시인)
입력일 2014-04-15 수정일 2014-04-15 발행일 2014-04-20 제 2891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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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사회운동을 한다는 어느 여성 단체 초청으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참석한 분들한테 물었습니다. “부모가 소중합니까? 부모 재산이 소중합니까? 남편이 소중합니까? 남편 직업이 소중합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한 다음 스스로 자신한테 물어 보십시오.” 참석한 분들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니, 쉽게 대답을 하기 어려운 것 같아 보였습니다. “다시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우리나라 은행에 있는 모든 돈과 여러분의 자식과 바꾸자고 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아무리 자식이 능력이 없고 속을 썩인다 하더라도 어찌 돈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우리나라 은행에 있는 모든 돈과 여러분의 남편과 바꾸자고 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때서야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식이야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돈과 바꿀 수 없지만, 남편이야 바꿀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거의 모든 사람이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웃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날이 갈수록 아이고 어른이고 사람보다 돈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참 씁쓸한 기분으로 다시 물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혼인을 앞둔 아가씨라면, 농촌에서 농사짓고 살아가는 가난한 총각한테 시집을 갈 수 있겠습니까? 혹시 나는 아무리 가난한 농촌 총각이라도 마음만 착하고 성실하면 시집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시겠습니까?” 백 명 넘는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는 웃지 못했습니다.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손을 들었더라면 나는 웃을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여태 걸었던 길이 삶의 길인지 죽음의 길인지도 모르고 돈과 편리한 삶만 쫓아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서정홍(안젤로·농부시인)